AI 붐의 역설: 왜 기술주는 채권 시장의 적이 되었나

by 구미잉

우리는 오랫동안 기술주 상승과 저금리를 환상의 짝꿍으로 여겨왔습니다. 금리가 낮아야 미래의 꿈(성장성)을 먹고사는 기술주의 가치가 높아지니까요. 하지만 지금 시장은 AI 붐이 오히려 고금리를 유발하는 기묘한 역설에 직면해 있습니다. 마치 주식 시장의 화려한 축제가 채권 시장의 비명 소리를 덮어버리는 듯한 모습이죠.


이 역설의 중심에는 AI 설비투자(CAPEX) 전쟁이라는 거대한 돈 먹는 하마가 있습니다. 2025년 3분기 실적 시즌, 마이크로소프트, 구글, 아마존, 메타 등 M7 기업들은 마치 약속이나 한 듯 천문학적인 규모의 AI 인프라 투자 계획을 쏟아냈습니다. CreditSights는 이들 기업의 연간 CAPEX가 2026년 6,020억 달러(약 800조 원)에 달할 것이라 전망했죠. 이는 웬만한 국가의 GDP와 맞먹는 규모입니다.


문제는 이 막대한 자금을 더 이상 내부 현금만으로는 감당할 수 없게 되었다는 점입니다. 현금 부자로 불리던 빅테크 기업들은 이제 AI 군비 경쟁을 위해 앞다투어 채권 시장에 손을 벌리고 있습니다. 메타는 최근 창사 이래 최대 규모인 300억 달러의 채권을 발행했고, 구글 역시 175억 달러를 조달했죠. 2025년에만 이들 5대 빅테크가 발행한 회사채는 지난 3년 치를 합친 것보다 많습니다.


채권 시장 입장에선 어떨까요? 과거에는 없던 거대한 공급 폭탄이 쏟아지는 셈입니다. BofA의 분석에 따르면, 실제로 이들 하이퍼스케일러 기업들의 채권 금리는 다른 기업들보다 더 가파르게 오르고(스프레드 확대) 있습니다. 이는 시장이 이 거대한 물량을 소화하는 대가로 이전보다 더 높은 이자를 요구하며 저항하기 시작했다는 의미입니다.


이는 단순히 회사채 금리만 올리는 것이 아닙니다. 한정된 자본 시장의 돈을 AI라는 거대한 블랙홀이 빨아들이자, 시중 금리 전반(미 국채 금리 포함)이 상승 압력을 받고 있습니다. 골드만삭스는 "AI 붐은 의심할 여지없이 금리 상승의 주요 동인"이라고 명시적으로 밝혔습니다.


결국 AI 붐은 연준을 깊은 딜레마에 빠뜨립니다. 연준은 K자 양극화의 하단(저소득층)을 위해 금리를 내리고 싶지만, K자 상단(AI 붐)이 유발하는 강력한 투자와 자금 수요, 그리고 인플레이션 압력이 금리 인하의 발목을 잡고 있습니다.


시장은 AI의 축복과 연준의 금리 인하라는 두 마리 토끼를 다 잡고 싶어 하지만, 지금 AI 붐은 연준의 금리 인하를 가로막는 가장 큰 장애물이자, '고금리 장기화(Higher for longer)' 시대를 고착화시키는 새로운 구조적 원인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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