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세 폭탄은 트럼프 행정부의 상징과도 같은 무기였습니다. 그런데 최근 이 단단했던 관세 장벽에 균열이 가기 시작했습니다. 중남미 4개국의 농산물 관세는 전격 철폐되었고, 스위스, 인도, 중국과의 협상 테이블에서도 관세 인하 소식이 들려옵니다. 과연 강경한 트럼프가 변하고 있는 걸까요?
이는 단순한 변심이라기보다는, 인플레이션이라는 더 무서운 적 앞에서 꺼내 든 고도로 계산된 전략적 피벗일 수 있습니다. 사실 이 복선은 지난 8월, 스콧 베센트 재무장관이 관세를 "녹아내려야 할 얼음"이라고 표현했을 때부터 깔려있었습니다.
트럼프 행정부는 "관세는 물가와 상관없다"라고 주장해 왔지만, 현실은 달랐습니다. 세인트루이스 연준은 최근 1년간 인플레이션의 10% 이상이 관세에서 비롯되었다고 분석했죠. 쇠고기, 커피, 바나나 등 장바구니 물가가 급등하자, K자 양극화의 하단에 있는 유권자들은 11월 초 지방선거에서 경제적 고통으로 심판을 내렸습니다. 행정부는 2026년 중간선거를 앞두고 인플레이션이라는 정치적 부담을 외면할 수 없게 된 것입니다.
결국 중남미 농산물 관세 철폐는, 이 장바구니 물가라는 급한 불을 끄기 위한 일방적 후퇴였습니다. 행정부가 스스로의 핵심 논리를 뒤집으면서까지 물가 안정에 나선 셈이죠.
하지만 동시에 트럼프 행정부는 관세 인하를 매우 영리한 거래 카드로도 활용하고 있습니다. 스위스에는 관세를 39%에서 15%로 낮춰주는 대가로 2,000억 달러의 투자를 약속받았고, 인도에는 50%의 징벌적 관세를 낮춰주는 조건으로 러시아산 원유 구매 축소라는 지정학적 양보를 얻어냈습니다. 중국과는 펜타닐 원료 통제를 대가로 관세를 인하했죠. 이는 베센트가 말한 "낮추기 위해 올린다(Elevate to deelevate)"는 전략이 그대로 실행된 것입니다.
결국 트럼프 행정부는 두 개의 전선에서 관세 인하 카드를 동시에 사용하고 있습니다. 국내 유권자들을 향해서는 물가 안정을 위한 항복 카드를, 협상 상대국들을 향해서는 원하는 것을 얻어내기 위한 거래 카드를 말이죠.
과연 이 아슬아슬한 두 얼굴의 전략은 성공할 수 있을까요? 아니면 관세라는 얼음이 녹아내린 자리에, 인플레이션이라는 더 뜨거운 불길이 모든 것을 삼켜버리게 될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