찢어진 청바지와 로켓

시장은 왜 악재를 호재로 삼키지 못했을까?

by 구미잉

어제 미국 증시를 보면서 참 묘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마치 한 편의 부조리극을 보는 것만 같았죠. 무대 한쪽에서는 서민 경제를 대변하는 타깃(Target)이 하루 만에 20% 넘게 폭락하며 비명을 질렀고, 다른 한쪽에서는 AI 경제를 상징하는 엔비디아가 여전히 로켓처럼 치솟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지금 단순히 K자형 양극화를 넘어, 현실 경제와 꿈의 경제가 완전히 쪼개지는 '거대한 분기점'을 지나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사실 시장은 그동안 나쁜 뉴스를 은근히 기다려왔습니다. 소비가 둔화되면 연준이 금리를 내려줄 것이라는 기대, 이른바 'Bad is Good'의 공식이 통용되었기 때문이죠. 하지만 어제는 분위기가 사뭇 달랐는데요. 타깃 쇼크로 소비 절벽의 공포가 엄습했음에도, 시장의 심판관인 미국 10년물 국채 금리는 오히려 위로 튀어 올랐습니다. 시장이 지금의 상황을 단순한 경기 둔화가 아니라, 물가는 잡히지 않고 성장은 꺾이는 스태그플레이션의 전조로 해석하기 시작했다는 위험한 신호가 아닐까요?


타깃 경영진의 고백을 들어보면 참 섬뜩할 정도로 구체적인데요. 소비자들이 식료품 같은 필수재만 구매하고, 의류나 가전 같은 재량재 소비는 완전히 멈췄다는 겁니다. 심지어 중산층 소비자들마저 타깃을 버리고 더 저렴한 월마트로 이동하는 '트레이드 다운' 현상이 뚜렷해졌죠. 이는 지난 인플레이션 기간을 버텨주던 가계의 잉여 저축이 이제 완전히 바닥났음을 알리는, 실물 경제의 '마진 콜'이나 다름없습니다.


반면 엔비디아가 보여준 숫자는 여전히 화려합니다. 전년 대비 60%가 넘는 매출 성장세는 AI라는 로켓의 연료가 아직 충분함을 증명했죠. 하지만 여기서 우리는 2000년 닷컴 버블 당시를 떠올려볼 필요가 있습니다. 당시 시스코 시스템즈가 인터넷 세상을 열어젖힐 것이라며 열광했지만, 결국 구경제 기업들이 침체에 빠져 IT 장비를 사줄 여력이 없어지자 그 화려했던 파티도 막을 내려야 했습니다.


결국 지금의 시장은 '찢어진 청바지를 입고 로켓에 올라탄' 형국입니다. 바닥(소비)이 무너지는 소리가 들리는데, 천장(기술주)만 쳐다보며 안도할 수는 없는 노릇이죠. 채권 시장이 금리 상승으로 경고음을 보내는 이유도 여기에 있는데요. 미국 정부의 막대한 재정 적자와 지정학적 리스크, 그리고 끈적한 물가가 뒤엉키며 연준의 손발을 묶고 있기 때문입니다.


집권 2년 차를 앞둔 트럼프 행정부의 정책 셈법이 참 복잡해지는 시점입니다. 과연 엔비디아라는 강력한 로켓 엔진이 무거워진 실물 경제를 끌고 올라갈 수 있을까요? 아니면 소비 침체라는 중력이 로켓마저 다시 땅으로 끌어내리게 될까요? 타깃이 쏘아 올린 작은 공이, 어쩌면 우리가 애써 외면해 왔던 경제의 민낯을 가장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매거진의 이전글K자 양극화, 정부의 역할은 무엇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