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려한 불금, 그 뒤에 숨겨진 그림자

by 구미잉

어제 미국 증시는 말 그대로 불금이었습니다. 전날의 하락을 말끔히 씻어내며 다우지수는 4만 5천 선을 회복했고, S&P 500과 나스닥도 기분 좋은 상승 마감을 했으니까요. 겉으로만 보면 역시 미국 시장은 강하다, 걱정할 것 없다는 안도감이 듭니다. 하지만 그 화려한 조명 아래 숨겨진 그림자를 들여다보면, 마냥 웃을 수만은 없는 복잡한 속내들이 얽혀 있습니다. 오늘은 어제 시장이 우리에게 보낸 이중적인 신호들을 하나씩 해석해 보려 합니다.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건 엔비디아와 로스(Ross)의 엇갈린 운명입니다. 엔비디아는 매출이 전년보다 60% 넘게 늘었다는 놀라운 성적표를 내놓았지만, 시장의 반응은 차가웠습니다. 마치 100점을 받아와도 왜 101점은 못 받았니라고 채근하는 부모님을 보는 것 같았죠. 반면, 미국의 할인 의류점인 로스는 실적 발표 후 주가가 8%나 급등하며 신고가를 기록했습니다.


이게 무슨 의미일까요? 엔비디아가 보여주는 AI 혁명은 분명 대단하지만, 당장 내 지갑을 불려주지는 않는다는 현실 자각이 시작된 겁니다. 반면 로스의 호실적은 사람들이 백화점 대신 아웃렛으로, 새 옷 대신 이월 상품으로 몰리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타깃 쇼크에 이어 로스의 급등까지, 소비자들이 더 싼 것을 찾아 필사적으로 움직이는 트레이드 다운 현상이 이제 거스를 수 없는 대세가 되었습니다. 시장은 지금 화려한 미래 기술보다, 당장 오늘을 버틸 수 있는 생존 아이템에 베팅하고 있는 셈입니다.


경제 지표들도 이런 불안함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습니다. 어제 발표된 11월 PMI 지표를 보면 제조업은 위축되고 있는데 서비스업만 홀로 뜨겁습니다. 공장은 멈추어가는데 식당과 여행지만 붐비는 기형적인 구조가 이어지고 있는 거죠. 더 걱정되는 건 미시간대 소비자심리지수입니다. 수치가 51.0까지 떨어졌는데, 이는 인플레이션이 가장 심각했던 2022년 수준과 비슷합니다. 지표상으로 물가가 잡혔다고는 하지만, 사람들이 체감하는 장바구니 물가는 여전히 고통스럽다는 뜻입니다. 수치상의 경제와 체감하는 경제, 이 둘 사이의 괴리가 그 어느 때보다 벌어져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제 주가가 오른 건 순전히 연준 위원들의 말 한마디 덕분이었습니다. 윌리엄스 뉴욕 연은 총재가 금리 인하 가능성을 시사하자, 시장은 펀더멘털의 둔화는 잊어버리고 유동성 파티가 다시 열릴 거라는 기대감에 취해버렸습니다. 하지만 이건 위험한 도박일 수 있습니다. 경기가 나빠서 금리를 내리는 건 결코 호재가 아니니까요. 마치 몸이 아파서 진통제를 맞는 건데, 진통제를 주니 이제 건강해질 거야라고 착각하는 것과 같습니다.


어제 비트코인이 혼자 급락한 것도 의미심장합니다. 주식 시장이 환호할 때 가장 민감한 자산인 코인이 무너졌다는 건, 시장 깊은 곳에 숨어있는 투기적 유동성이 빠져나가고 있다는 신호일 수 있습니다. 불금의 열기가 식고 난 주말, 우리는 차분하게 질문을 던져봐야 합니다. AI라는 로켓이 잠시 주춤하는 사이, 우리 발밑의 소비라는 지반이 너무 약해진 건 아닐까요? 화려한 반등에 취하기보다는, 로스 매장 앞에 길게 늘어선 줄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곰곰이 생각해 봐야 할 시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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