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환율 화면을 보며 격세지감을 느끼신 분들 많으셨을 겁니다. 달러당 1,460원. 불과 3년 전 레고랜드 사태 때만 해도 이 숫자는 비상 상황을 알리는 사이렌과 같았습니다. 당시 사람들에게 향후 환율이 1,300원으로 갈까요, 1,600원으로 갈까요라고 물으면 열에 아홉은 당연히 1,300원으로 돌아가야죠라고 답했었죠. 1,400원대는 미친 수준이고, 언젠가는 정상으로 돌아갈 거라는 믿음이 있었으니까요. 그런데 지금은 어떤가요. 이제 1,600원이라는 숫자가 더 이상 공상과학 소설처럼 들리지 않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시장은 이미 고환율이라는 새로운 환경, 즉 뉴노멀에 적응하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여기서 우리는 아주 중요한 팩트 하나를 짚고 넘어가야 합니다. 환율이 1,460원이라서 나라가 망할 것 같다면, 국가 부도 위험을 나타내는 지표인 CDS 프리미엄도 같이 뛰어야 정상이겠죠. 레고랜드 사태가 터졌던 2022년 말, 한국의 5년물 CDS 프리미엄은 75bp까지 치솟았습니다. 외국인들이 한국 경제를 진짜 위험하게 봤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지금은 어떨까요? 놀랍게도 22bp 수준에 불과합니다. 환율은 그때나 지금이나 1,400원대인데, 국가 부도 위험은 3분의 1 토막이 난 겁니다. 이게 무슨 의미일까요? 지금의 고환율은 외국인이 한국을 버리고 도망가는 위기가 아니라, 한국 돈이 더 좋은 기회를 찾아 해외로 나가는 투자의 결과라는 뜻입니다.
이 구조적인 변화의 중심에는 본원소득수지라는 새로운 영웅이 있습니다. 과거에는 우리가 자동차나 반도체를 팔아 버는 상품수지가 가장의 유일한 월급이었습니다. 그런데 최근 통계를 보면 상품수지 흑자 폭은 줄어들거나 횡보하는데, 해외 투자에서 들어오는 배당과 이자인 본원소득수지 흑자는 눈에 띄게 늘어나고 있습니다. 국민연금과 서학개미들이 미국 주식을 사고, 삼성전자가 텍사스에 공장을 지은 덕분에 이제는 해외에서 벌어오는 두 번째 월급이 쏠쏠하게 들어오고 있는 겁니다. 이 돈이 환율 1,600원을 막아주는 아주 든든한 방파제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물론 장기적으로는 이런 안전판이 있지만, 단기적인 환율 움직임은 심리의 영역입니다. 지금처럼 환율이 슬금슬금 오르면 시장에는 불안한 심리가 싹트기 시작합니다. 수출업체들은 달러를 벌어도 어차피 더 오를 텐데라며 팔지 않고 움켜쥐게 되죠. 주식이 오를 것 같으면 안 팔고 버티는 것과 똑같은 이치입니다. 이렇게 되면 시중에 달러 공급이 말라버리면서 환율 상승에 가속도가 붙습니다.
하지만 영원히 오르는 자산은 없습니다. 만약 우리가 예상치 못한 변수가 터진다면 어떨까요. 미국이 갑자기 금리를 확 내려버리거나, 꽉 막혔던 금융 규제를 풀어주면서 달러 약세 요인이 발생한다면요. 그때는 움켜쥐고 있던 달러들이 한꺼번에 시장에 쏟아져 나올 수 있습니다. 더 오를 줄 알았는데 아니네?라는 인식이 퍼지는 순간, 매물이 매물을 부르는 급락 장세가 연출될 수도 있는 겁니다. 장기적으로는 우상향이 맞더라도, 단기적으로는 언제든 큰 변동성이 나타날 수 있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흥미로운 관전 포인트가 하나 더 있습니다. 바로 중국 위안화입니다. 최근 달러가 유로화나 엔화 대비로는 강세인데, 유독 위안화에 대해서는 힘을 못 쓰고 있습니다. 달러당 7.08위안 수준에서 아주 견고하게 버티고 있는데요. 엔화가 무너질 때 같이 무너지던 과거와는 딴판입니다. 월가에서는 이를 두고 중국 정부가 트럼프 2기 행정부의 관세 폭탄에 대비해 힘을 비축하고 있다고 해석합니다. 지금 미리 환율을 떨어뜨리면(약세), 나중에 진짜 관세를 맞았을 때 쓸 카드가 없으니까요. 또한 자본 유출을 막기 위한 고육지책이기도 합니다. 위안화마저 엔화처럼 약해지면 중국 내 부자들이 돈을 싸 들고 해외로 도망갈 테니까요. 1,460원이라는 숫자에 졸지 말고, 그 이면에 쌓이고 있는 배당금이라는 안전판과 위안화의 버티기 한판승을 흥미롭게 지켜보는 하루가 되셨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