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부터 미국의 최대 쇼핑 축제인 블랙 프라이데이가 시작됩니다. 아마 뉴스에서는 쇼핑몰마다 인산인해를 이루고, 온라인 매출이 사상 처음으로 1조 달러를 돌파할 거라는 화려한 헤드라인이 쏟아질 겁니다. 겉으로만 보면 미국 소비는 여전히 뜨겁고, 경기 침체 우려는 기우였나 싶을 정도죠. 하지만 그 화려한 불빛 아래 감춰진 그림자를 들여다보면, 우리는 전혀 다른 이야기를 마주하게 됩니다. 오늘은 쇼핑백 속에 숨겨진 빚, 그리고 마지막 한 방울까지 짜내고 있는 소비의 민낯에 대해 이야기해 보려 합니다.
우선 매출 1조 달러라는 숫자부터 냉정하게 뜯어봐야 합니다. 매출이 늘어난 건 사람들이 물건을 더 많이 사서가 아니라, 물가가 올라서 물건값이 비싸졌기 때문일 가능성이 큽니다. 실제로 물가 상승분을 뺀 실질 소비는 제자리걸음 수준이죠. 게다가 사람들이 지갑을 여는 이유도 예전과는 다릅니다. 여유가 있어서가 아니라, 지금 안 사면 내년에 관세 때문에 더 비싸질 거라는 공포, 그리고 50% 폭탄 세일이 아니면 살 수 없다는 절박함이 소비를 부추기고 있는 겁니다.
더 큰 문제는 이 소비를 지탱하는 돈의 출처입니다. 지금 미국인들은 내 돈이 아니라 남의 돈, 즉 빚으로 쇼핑을 하고 있습니다. 특히 주목해야 할 건 BNPL(Buy Now, Pay Later), 우리말로 선구매 후 지불 서비스의 폭증입니다. 신용카드가 막힌 저신용자나 Z세대들이 터치 몇 번으로 외상을 쓰는 이 서비스에 몰리고 있는데요. 충격적인 건 이 BNPL을 명품 사는 데 쓰는 게 아니라, 식료품 사는 데 쓰고 있다는 겁니다. 당장 먹을 빵과 우유를 사는 데도 할부를 써야 할 만큼 현금 흐름이 말라버렸다는 뜻이죠.
이런 상황은 연체율 지표에서 적나라하게 드러납니다. 뉴욕 연은에 따르면 소득 하위 계층의 신용카드 연체율이 무려 20%를 넘어섰습니다. 5명 중 1명은 카드값을 못 갚고 있다는 얘기죠. 이는 2008년 금융위기 때보다 더 심각한 수준입니다. 타깃 같은 마트들이 재고를 털어내려고 50% 세일을 외치는 건, 자선사업이 아니라 이렇게 지갑이 닫힌 소비자들을 어떻게든 붙잡기 위한 처절한 생존 전략인 셈입니다.
우리는 지금 다 쓴 줄 알았던 치약 튜브를 마지막까지 쥐어짜고 있는 모습을 보고 있는 건지도 모릅니다. 이번 블랙 프라이데이가 그 마지막 한 방울일 수 있습니다. 축제가 끝나고 1월이 되어 BNPL 할부금과 카드 명세서가 날아오기 시작하면, 미국 경제는 심각한 부채 숙취에 시달리게 될 겁니다. 화려한 매출 숫자에 속지 마십시오. 그 뒤에는 빚으로 쌓아 올린 위태로운 모래성이 서 있습니다. 이번 연말은 쇼핑몰의 인파보다는, 그들이 들고 있는 카드의 한도가 얼마나 남았는지를 걱정해야 할 시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