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은 오늘부터 추수감사절 연휴에 들어갑니다. 다들 칠면조를 뜯으며 파티를 즐기겠지만, 사실 어젯밤 월가는 아주 황당한 일을 겪었습니다. 우리가 그토록 기다렸던 연준의 마지막 성적표, 10월 PCE 물가 지수가 발표되지 않았거든요. 지난달 있었던 역대 최장기 셧다운 여파로 데이터 집계가 늦어졌다는 겁니다. 수능 날 시험장에 갔더니 시험지가 도착하지 않았다는 소식과 다를 바가 없죠.
보통 이렇게 중요한 데이터가 없으면 시장은 불안해하며 떨어지기 마련입니다. 그런데 어젯밤 시장은 오히려 환호했습니다. 나쁜 성적표를 받아 들고 선생님께 혼날까 봐 조마조마했는데, 성적표가 안 나온다니 차라리 잘됐다며 안도의 한숨을 내쉰 꼴입니다. 여기에 며칠 전 등장한 베센트 재무장관 지명자가 재정 적자를 줄이겠다는 든든한 약속(3-3-3 계획)까지 해줬으니, 국채 금리는 뚝 떨어지고 주가는 기분 좋게 올랐습니다. 겉으로만 보면 12월 금리 인하는 따 놓은 당상이고, 산타 랠리까지 예약된 것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이 파티장 구석에는 우리가 애써 외면하고 있는 불편한 진실들이 쌓여 있습니다. 어제 PCE 대신 발표된 소비자 신뢰지수를 보셨나요? 수치가 뚝 떨어지며 소비자들이 느끼는 체감 경기가 꽁꽁 얼어붙었음을 보여줬습니다. 게다가 실업수당을 계속 받는 사람(연속 실업수당 청구)의 숫자도 늘어났죠. 한 번 해고되면 새 직장을 구하기가 그만큼 어려워졌다는 뜻입니다.
시장은 지금 이 나쁜 뉴스들을 좋은 뉴스로 해석하고 있습니다. 경기가 안 좋으니 연준이 금리를 내려줄 거라는 기대감 때문이죠. 하지만 이건 위험한 착각일 수 있습니다. 성적표가 사라졌다고 해서 우리가 공부를 잘하게 된 건 아니니까요. 클리블랜드 연은이 추정한 그림자 데이터에 따르면, 물가는 여전히 연준의 목표치보다 높습니다. 지금은 데이터 공백이라는 짙은 안갯속에서 베센트라는 등대 하나만 믿고 달리는 형국입니다.
안개가 걷히고 12월 초에 밀린 성적표들이 한꺼번에 쏟아져 나올 때, 과연 시장은 그때도 웃을 수 있을까요? 소비 심리가 바닥을 치는 와중에 블랙 프라이데이 매출마저 꺾인다면, 우리가 기대했던 연착륙은 신기루처럼 사라질지도 모릅니다. 추수감사절 식탁은 풍성하겠지만, 연휴가 끝나고 마주할 현실은 생각보다 차가울 수 있습니다. 사라진 성적표에 안도하기보다는, 그 공백 뒤에 숨어있는 진짜 경제의 체온을 수시로 확인해야 할 시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