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의 효과라는 달콤한 마취제

by 구미잉

11월의 마지막 날입니다. 올해도 이제 딱 한 달 남았네요. 올 한 해를 돌아보면 참 다사다난했습니다. 연초에는 관세 공포로 주가가 20%나 폭락하며 지옥을 맛봤지만, 4월 저점 이후 무려 36%나 반등하며 천당을 오갔으니까요. 특히 이번 11월은 잠시 숨을 고르긴 했지만, 연간으로 보면 S&P 500은 여전히 기록적인 상승세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자산 시장만 놓고 보면, 미국 경제는 그 어느 때보다 풍요로워 보입니다.


실제로 통계도 이를 증명합니다. 미 연준에 따르면 미국 가계의 순자산은 176조 달러를 돌파하며 사상 최고치를 경신했습니다. 주식과 집값이 오르니 장부상으로는 전 국민이 부자가 된 셈이죠. 경제학에서는 이를 부의 효과(Wealth Effect)라고 부릅니다. 자산 가격이 오르면 사람들은 실제로 소득이 늘지 않아도 자신이 부자가 된 것처럼 느껴 소비를 늘리게 된다는 이론이죠.


하지만 여기에는 치명적인 함정이 숨어 있습니다. 자산은 늘었지만, 정작 우리 주머니에 꽂히는 진짜 월급, 즉 실질 가처분 소득은 제자리걸음이기 때문입니다. 물가는 오르는데 월급은 그대로인 상황에서 자산 가격만 폭등한 겁니다. 결국 지금의 소비 호조는 땀 흘려 번 돈이 아니라, 주식 앱을 열어볼 때마다 찍혀있는 평가 수익이 주는 심리적 위안, 일종의 마취제 덕분에 유지되고 있는 건지도 모릅니다.


문제는 이 마취제가 언제까지 효과를 발휘할 수 있느냐입니다. 12월은 전통적으로 산타 랠리가 찾아오는 달입니다. 하지만 올해는 조금 다를 수 있습니다. 내년부터 세법이 바뀐다는 소식에, 미리 주식을 팔아 세금을 아끼려는 매도 물량이 12월 초에 쏟아질 수 있거든요. 게다가 11월에 너무 많이 먹어서 배가 부른 시장이 연말까지 쉬지 않고 달릴 수 있을지도 의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월가는 여전히 낙관적입니다. 역사적으로 대선 이듬해 12월은 변동성은 있어도 결국 상승으로 마감하는 경우가 많았으니까요. 하지만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지금 우리가 즐기는 이 풍요로움이 빚과 자산 인플레이션이라는 모래성 위에 지어진 것임을요. 자산 가격이 조금만 흔들려도, 마취에서 깨어난 소비자들은 차가운 현실(소득 정체)을 마주하게 될 겁니다. 12월의 시장은 화려한 산타 랠리와 냉혹한 세금 이슈 사이에서 줄타기할 것으로 보입니다. 부의 효과라는 달콤함에 취하기보다는, 내 지갑 속 진짜 현금 흐름을 점검하며 차분하게 한 해를 마무리하는 지혜가 필요한 시점입니다.

매거진의 이전글반쪽짜리 불금과 10만 달러의 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