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중순, 시장은 마치 폭풍 전야처럼 고요합니다. 주식 시장의 공포지수인 VIX는 16선에 머물며 더할 나위 없이 평온한 모습을 보이고 있죠. 투자자들은 다가오는 CPI 발표와 FOMC가 산타 랠리의 기폭제가 되어주길 기대하고 있습니다. 물가는 잡혔고, 연준은 금리를 내릴 것이며, 경제는 연착륙할 거라는 믿음이 그 어느 때보다 강해 보입니다.
하지만 이 평온함 뒤에는 섬뜩한 경고등이 켜져 있습니다. 오늘 밤 발표될 11월 CPI를 미리 점쳐보는 클리블랜드 연은의 나우캐스트 모델은 헤드라인 물가가 전월 대비 0.32% 오를 것으로 예상하고 있습니다. 연율로 따지면 4%에 육박하는 수치죠. 연준의 목표인 2%와는 거리가 멀어도 한참 멉니다. 특히 잠잠했던 중고차 가격이 허리케인 피해 복구 수요 등으로 1.3%나 급등하며 물가 상승의 새로운 불쏘시개가 되고 있습니다. 디플레이션의 효자 노릇을 하던 상품 물가가 배신을 때린 격입니다.
더 골치 아픈 건 주거비입니다. 실제 시장의 월세는 떨어지고 있는데, 통계에 잡히는 주거비(CPI 내 비중 35%)는 1년 전 계약분을 반영하느라 여전히 오름세를 보이고 있습니다. 연준은 백미러만 보고 운전하는 꼴이라, 당장 눈앞의 데이터가 높게 나오면 금리 인하 버튼을 누르기 주저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런 상황을 채권 시장은 누구보다 먼저 감지하고 있습니다. 주식 시장이 태평성대를 즐길 때, 채권 변동성 지수인 MOVE는 67을 넘나들며 공포에 떨고 있습니다. 채권 트레이더들은 인플레이션이 끈적하게 달라붙어 떨어지지 않는, 소위 라스트 마일의 고통이 시작됐음을 직감하고 있는 겁니다.
결국 지금 우리는 주식 시장의 낙관론과 채권 시장의 비관론이 정면으로 충돌하는 지점에 서 있습니다. 만약 오늘 밤 CPI가 시장의 예상보다 조금이라도 높게 나온다면, 낙관에 취해있던 주식 시장은 뒤늦게 채권 시장의 공포를 학습하게 될지도 모릅니다. 2% 물가는 아직 신기루에 불과합니다. 마지막 1마일을 가는 길은 우리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울퉁불퉁하고 고통스러울 수 있다는 사실을, 이번 데이터가 증명할지도 모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