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2월 25일 크리스마스입니다. 거리에는 캐럴이 울리지만 도쿄와 뉴욕의 트레이딩 룸에는 팽팽한 긴장감이 감돌고 있습니다. 며칠 전 일본은행이 1995년 이후 처음으로 금리 0.5%의 벽을 깨고 0.75%로 인상했지만, 시장은 보란 듯이 엔화를 팔아치우고 달러를 샀습니다. 금리를 올리면 돈의 가치가 올라야 한다는 경제학 원론이 무참히 깨진 것입니다.
많은 사람이 시장이 일본은행을 얕잡아 봤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감정적인 해석을 넘어 냉정한 숫자를 들여다보면 시장이 왜 이렇게 움직이는지 명확한 이유가 보입니다. 바로 실질 금리의 함정 때문입니다.
명목 금리는 0.75%로 올랐지만 일본의 물가 상승률은 여전히 3%대입니다. 금리에서 물가를 뺀 실질 금리는 여전히 마이너스 2.25% 수준입니다. 은행에 돈을 넣으면 구매력이 오히려 깎이는 나라의 화폐를 누가 들고 있고 싶을까요. 반면 미국은 금리를 내려도 실질 금리가 든든한 플러스 상태입니다. 글로벌 자본 입장에서 일본의 금리 인상은 아직 간에 기별도 안 가는 수준이었던 겁니다. 이것이 우에다 총재의 금리 인상에도 불구하고 엔화 매도세가 멈추지 않는 진짜 이유입니다.
하지만 여기서 방심하면 안 됩니다. 시장이 경제학 교과서를 비웃는 순간 정책 당국은 물리력을 행사하고 싶은 유혹에 빠지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오늘인 크리스마스는 그 물리력을 행사하기에 가장 완벽한 날입니다.
금융 시장에는 씬 마켓(Thin Market)이라는 용어가 있습니다. 연말 연휴에는 기관 투자자들이 휴가를 떠나 거래량이 급감합니다. 거래량이 얇으면 평소보다 적은 돈으로도 시세를 크게 움직일 수 있습니다. 일본 재무성 입장에서 이보다 더 좋은 빈집털이 기회는 없습니다. 가타야마 재무상이 만반의 준비가 되어 있다고 경고한 것은 빈말이 아닐 가능성이 큽니다. 실제로 2022년 10월 일본 당국은 금요일 밤 유동성이 가장 적은 틈을 타 스텔스 개입을 감행했고 환율 흐름을 단숨에 뒤집었습니다.
시장이 일본은행의 금리 인상 카드를 무시했다면 이제 남은 건 재무성의 실력 행사뿐입니다. 만약 오늘 밤, 혹은 한적한 연말 장세에 기습적인 엔화 매수 개입이 들어온다면 방심하고 있던 투기 세력들은 퇴로를 차단당한 채 막대한 손실을 볼 수 있습니다.
이 나비효과는 도쿄에서 끝나지 않습니다. 엔화 약세에 기대어 미국 AI 기술주에 투자했던 자금들이 문제입니다. 만약 엔화 가치가 급등하면 마진콜을 피하기 위해 주식을 팔아야 할 수도 있습니다. 2024년 8월 엔화 가치가 급등하자 닛케이와 나스닥이 동반 폭락했던 블랙 먼데이의 악몽을 기억하실 겁니다. 엔비디아와 마이크로소프트 같은 주도주들이 가장 먼저 매도 타깃이 될 수 있습니다.
2025년의 끝자락, 미국 주식에 취해 엔화의 경고음을 무시하기엔 겨울바람이 너무 매섭습니다. 산타클로스의 선물 대신 일본 재무성의 청구서가 날아올 수 있는 연말입니다. 환율 창을 띄워두고 안전벨트를 매야 할 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