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재가 넘치는데 환율은 왜 우는가

by 구미잉

올 한 해 우리 경제 참 다사다난했습니다. 그런데 최근 경제 뉴스를 보면서 고개를 갸웃하시는 분들이 많으실 것 같습니다. 뉴스를 보면 분명 수출이 역대 최대라거나 무역수지 흑자가 엄청나다는 기분 좋은 소식이 들려오는데, 정작 우리가 여행 갈 때 환전하려고 보면 환율은 여전히 1,400원 근처에서 내려올 생각을 안 하니까요. 참 이상하지 않나요. 공부를 전교 1등 했는데 정작 성적표에는 빨간불이 켜져 있는 셈이니까요. 오늘은 이 미스터리한 현상, 그 이면에 숨겨진 돈의 심리에 대해 이야기를 나눠볼까 합니다.


전통적인 경제학 교과서대로라면 지금 환율은 내려가는 게 맞습니다. 우리가 물건을 많이 팔아서 달러를 벌어오면 나라 안에 달러가 흔해지니 달러 가치는 떨어지고 원화 가치는 올라야 하거든요. 그런데 지금 시장은 교과서와는 정반대로 움직이고 있습니다. 왜 그럴까요. 바로 돈의 흐름이 바뀌었기 때문입니다. 예전에는 물건을 팔아서 번 돈이 환율을 결정했다면, 지금은 투자를 위해 움직이는 돈의 힘이 훨씬 더 세졌거든요. 쉽게 말해 기업들이 수출로 달러를 벌어와도 그 돈을 한국으로 가져오지 않고, 미국 이자가 더 높네 하면서 해외에 그대로 쌓아두거나 재투자하는 겁니다. 여기에 우리 서학개미 여러분과 국민연금이라는 거대한 고래까지 해외 주식을 사들이느라 바쁘니 들어오는 달러보다 나가는 달러가 더 많은, 이른바 밑 빠진 독 현상이 나타나고 있는 거죠.


여기에 불을 지피는 것이 바로 시장 참여자들의 심리입니다. 조금 어려운 말로 리즈 앤 래그라고 하는데요, 원리는 아주 간단합니다. 백화점 세일이 내일 끝난다고 해볼까요. 당장 필요 없는 물건도 내일이면 비싸진다는 생각에 오늘 미리 사겠죠. 수입 업체들도 마찬가지입니다. 환율이 오를 것 같으니 결제일을 앞당겨서 미리 달러를 사둡니다. 반대로 수출 업체는 어떤가요. 달러를 갖고 있으면 환율이 올라서 원화를 더 많이 받을 수 있는데 굳이 지금 팔 이유가 없죠. 최대한 늦게 팝니다. 달러를 사려는 줄은 길게 늘어서 있는데 팔려는 사람은 가게 문을 닫고 기다리는 상황. 이러니 펀더멘털이 좋아도 환율이 튀어 오르는 오버슈팅이 나타나는 겁니다.


이런 쏠림이 심해지면 시장은 공포에 질리게 됩니다. 과거 2022년 레고랜드 사태 기억하시나요. 당시 내부의 신용 위기가 터지자 환율이 순식간에 1,440원을 뚫고 올라갔었죠. 그때 우리는 뼈저린 교훈을 얻었습니다. 내부의 불안이 환율이라는 방아쇠를 당길 수 있다는 것을요. 그래서 정부가 이번엔 아주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습니다. 마치 소방관처럼 말이죠. 가장 눈에 띄는 건 역시 국민연금과의 외환 스왑입니다. 국민연금이 해외 투자를 하려면 달러가 필요한데 이걸 시장에서 사면 환율이 오르니까 한국은행 금고에 있는 달러를 빌려주는 겁니다. 시장에 달러를 사려는 큰손 하나를 잠시 퇴장시키는 효과가 있죠. 여기에 서학개미들이 해외 주식을 팔고 한국으로 돌아오면 세금을 깎아주겠다는 당근책까지 내놨습니다.


그럼 이 정책들이 효과가 있을까요. 네, 분명 급한 불을 끄는 데는 도움이 됩니다. 실제로 최근 환율이 미친 듯이 치솟는 걸 막아주는 방지턱 역할은 톡톡히 하고 있거든요. 하지만 냉정하게 말해서 방지턱이 과속을 막을 순 있어도 차를 멈춰 세우거나 유턴시킬 수는 없습니다. 2016년 중국 위안화 사태를 복기해 보면 답이 나옵니다. 당시 중국이 환율 방어에 엄청난 돈을 쏟아부었지만 결국 시장을 진정시킨 건 미국의 금리 인상 속도 조절이라는 외부의 따뜻한 바람이었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 아닐까요. 정부의 노력으로 속도 조절은 가능하겠지만 환율의 방향 자체를 아래로 꺾으려면 결국 미국의 금리 인하나 글로벌 달러 약세 같은 대외적인 변화가 함께 어우러져야 합니다.


이제 우리는 인정해야 할지도 모릅니다. 환율 1,100원, 1,200원 하던 시대는 지났을 수 있다는 것을요. 우리 경제의 체질이 바뀌었고 돈이 흐르는 길이 바뀌었습니다. 1,300원, 1,400원이라는 숫자가 위기가 아니라 새로운 표준이 되어가는 과정일지도 모르죠. 다가오는 2026년, 환율 시장은 그 어느 때보다 변동성이 클 것으로 보입니다. 위로 튈 수도 아래로 급락할 수도 있는 양방향의 파도가 칠 텐데요. 이럴 때일수록 환율이 얼마까지 갈 거야라는 맞히기 게임보다는 파도가 높으니 구명조끼를 단단히 입자는 리스크 관리의 관점이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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