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뉴스를 보면 미국 소비가 여전히 탄탄하다는 이야기가 많이 들려옵니다. 지난 연말 쇼핑 시즌 매출이 1조 달러를 넘기며 역대급 기록을 세웠다는 소식은 마치 미국 경제에 아무런 문제가 없는 듯한 인상을 주기에 충분해 보입니다. 금리가 이렇게 높은데도 사람들은 지갑을 펑펑 열고 있는 것처럼 보이니까요. 하지만 이 화려한 숫자의 이면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무언가 이상한 징후들이 포착됩니다. 엔진 소리는 요란한데 연료 게이지는 바닥을 가리키고 있는 자동차를 보는 듯한 불안한 마음이 드는 것도 사실입니다.
가장 먼저 눈에 띄는 데이터는 저축률입니다. 팬데믹 때 정부 지원금으로 두둑해졌던 미국인들의 주머니는 이제 텅 비어버린 듯합니다. 저축률이 3%대까지 떨어졌는데 이는 버는 돈의 대부분을 다 쓰고 있다는 뜻이겠죠. 저축도 없는데 사람들은 무슨 돈으로 그 많은 쇼핑을 했을까요. 그 답은 생각보다 간단합니다. 바로 빚입니다. 그것도 아주 우려스러운 형태의 빚이 늘어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합니다.
이번 연말 쇼핑의 숨은 동력은 BNPL, 즉 선구매 후 지불 서비스였습니다. 물건은 지금 가져가고 돈은 나중에 나눠서 내는 일종의 외상 거래죠. 과거에는 고가의 가전제품을 살 때나 쓰던 이 서비스가 이제는 식료품을 사는 데까지 쓰이고 있습니다. 필수적인 생필품 소비까지 외상에 의존해야 할 만큼 서민들의 현금 흐름이 악화되었다는 증거 아닐까요. 이렇게 쌓인 빚은 공식적인 가계 부채 통계에도 잘 잡히지 않는 그림자 부채라는 점에서 리스크를 관리하기가 참 어려운 부분이기도 합니다.
소비의 양극화, 즉 K자형 구조도 더욱 뚜렷해지는 모습입니다. 주식과 부동산을 보유한 상위 20% 계층은 자산 가격 상승에 따른 부의 효과로 기분 좋게 지갑을 열고 있습니다. 명품 매장과 고급 레스토랑이 여전히 붐비는 이유겠죠. 반면 고물가에 노출된 나머지 대다수 소비자는 저렴한 마트로, 할인 매장으로 밀려나고 있습니다. 월마트와 같은 할인점 매출은 늘어나는데 백화점이나 일반 소매점 매출은 둔화되는 현상이 바로 이 양극화를 보여주는 단면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이제 1월이 되었습니다. 지난 연말 외상으로 소비했던 대가, 즉 청구서가 각 가정으로 도착하기 시작하는 시점입니다. 이미 2030 세대의 카드 연체율과 자동차 대출 연체율은 위험 수위를 넘나들고 있습니다. 빚으로 억지로 돌렸던 소비 엔진이 과열되어 멈춰 설 수도 있는, 이른바 소비 절벽의 시간이 다가오고 있는 것은 아닌지 우려스럽습니다.
미국 소비가 꺾인다면 그 충격은 미국 내부에만 머물지 않고 글로벌 경제 전반으로 확산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수출 의존도가 높은 한국 경제 입장에서도 결코 가볍게 넘길 이슈가 아니겠죠. 화려한 쇼핑 시즌의 헤드라인 숫자에만 취해 있을 때가 아닙니다. 그 뒤에 가려진 빚의 그림자, 그리고 점점 얇아지고 있는 가계의 기초 체력을 예의주시해야 할 때가 아닐까요. 겉모습만 보고 안심하기에는 내부의 구조적 취약점이 꽤나 깊어 보이는 상황입니다. 2026년 1분기, 미국 소비자들이 받아 들 성적표가 시장의 예상보다 조금 더 가혹할 수 있음을 염두에 두는 지혜가 필요해 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