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의 인문학 2부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는 옛말이 있습니다. 뇌과학적으로 보면 이건 단순한 비유가 아닙니다. 실제로 누군가의 대박 소식을 들었을 때 우리 뇌에서는 전방 대상 피질이라는 부위가 활성화되는데 이곳은 물리적인 고통을 느낄 때 반응하는 영역과 정확히 일치합니다. 즉 남의 성공이 나에게는 진짜로 배가 아픈 고통인 셈입니다.
우리는 절대적인 부가 아니라 상대적인 부에 반응하도록 설계되어 있습니다. 연봉 5천만 원을 받으면서 내 주변 사람들이 모두 2천만 원을 버는 세상과 연봉 1억 원을 받으면서 주변 사람들이 모두 2억 원을 버는 세상 중 하나를 고르라면 놀랍게도 절반 가까운 사람들이 전자를 택합니다. 남들보다 뒤처진다는 느낌인 상대적 박탈감이 내 통장에 찍힌 절대적인 액수보다 더 큰 영향을 미치기 때문입니다.
요즘처럼 자산 시장이 급등하고 SNS에 수익 인증이 넘쳐나는 시기에는 이 고통이 극대화됩니다. 내 수익률이 20퍼센트로 훌륭하더라도 옆자리 동료가 100퍼센트를 벌었다면 뇌는 이를 성공이 아닌 손실로 인식합니다. 이 가짜 손실을 만회하기 위해 뇌는 이성을 잃고 더 위험한 투자, 즉 뇌동매매로 우리를 몰아넣습니다. 비교는 단순히 기분을 망치는 것을 넘어 계좌를 망치는 가장 확실한 지름길입니다.
이 지옥에서 탈출하는 방법은 무엇일까요. 충분함이라는 선을 긋는 것입니다. 소설가 커트 보니것이 억만장자가 주최한 파티에서 친구 조셉 헬러에게 물었습니다. 이 파티를 연 호스트가 오늘 하루 번 돈이 자네가 평생 책을 팔아 번 돈보다 많을 텐데 기분이 어떤가 하고 말이죠. 그러자 헬러는 이렇게 답했습니다. 그렇지만 나에게는 그가 평생 가질 수 없는 것이 하나 있다네. 바로 충분하다는 느낌이지라고요.
워런 버핏은 이를 내면의 점수판이라고 불렀습니다. 투자의 기준을 시장이나 남에게 두지 말고 나의 목표에 두라는 것입니다. 내 노후를 위해 연 7퍼센트의 수익이 필요하다면 그리고 내가 그 목표를 달성하고 있다면 남들이 100퍼센트를 벌든 말든 그것은 나와 상관없는 일입니다. 나의 목표를 달성하는 것이 곧 승리이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뇌는 끊임없이 남과 비교하라고 속삭입니다. 하지만 그 속삭임에 귀를 닫고 나만의 충분함을 정의할 때 비로소 우리는 시장의 소음에서 벗어나 평온한 투자를 할 수 있습니다. 부러움은 가장 비싼 감정입니다. 그 비싼 값을 치르느라 당신의 행복과 계좌를 낭비하지 마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