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인들의 어깨 위에서, 3부

고통 없이는 신뢰도 없다: 폴 볼커의 위대한 전쟁

by 구미잉

인플레이션이라는 괴물을 잡기 위한 날카로운 이론은 이미 존재했습니다. 통화량을 엄격히 통제하면 물가를 잡을 수 있다는 밀턴 프리드먼의 청사진이었죠. 하지만 이론은 그것을 실행할 용기 있는 리더가 없다면 창고 속의 칼에 불과하죠. 1979년, 15%에 육박하는 살인적인 인플레이션의 불길 앞에서 미국은 이론을 현실로 만들 영웅, 바로 폴 볼커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폴 볼커가 1979년 연준 의장으로 취임했을 때, 미국 경제는 깊은 병에 빠져 있었는데요. 1980년 3월 소비자물가상승률은 14.8%라는 정점을 기록했죠. 더 심각한 문제는, 아무도 연준이 인플레이션을 잡을 의지나 능력이 있다고 믿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신뢰의 위기’야말로 볼커가 해결해야 할 가장 근본적인 문제였습니다. 2미터가 넘는 거구에서 뿜어져 나오는 위압감만큼이나, 그는 공공의 이익을 위해서는 어떤 정치적 타협도 거부하는 강직한 신념의 소유자였습니다. 그에게 중앙은행의 독립성은 흥정의 대상이 아니었죠.


이 교착 상태를 타개하기 위해 볼커는 1979년 10월, 예고 없는 기자회견을 통해 연준의 통화정책 운영방식을 근본적으로 바꾸겠다고 선언합니다. 이는 마치 집 안의 온도를 직접 설정하는 대신, 보일러로 들어가는 연료의 양 자체를 강력하게 잠가버리는 것과 같았습니다. 당장의 추위는 혹독하겠지만, 과열된 난방을 확실히 끝낼 수 있는 가장 근본적인 방법이었죠. 이 ‘연료 제어’라는 방패 뒤에서, 금리는 인플레이션을 잡기 위해 필요한 만큼 자유롭게 치솟았습니다.


그 결과는 즉각적이고 고통스러웠습니다. 연방기금금리는 1981년 6월, 20%라는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고, 미국 경제는 두 차례에 걸친 심각한 경기침체에 빠졌습니다. 실업률은 10%를 넘어섰고, 수많은 기업이 도산했었죠. 사회적 저항 또한 거셌는데요. 분노한 농부들은 트랙터를 몰고 와 연준 본관을 봉쇄했고, 자동차 딜러들은 팔리지 않은 차의 열쇠를 담은 관을 연준에 보내는 등 격렬한 항의가 잇따랐습니다.


이 모든 고통과 압박에도 불구하고 볼커는 자신의 정책을 굽히지 않았는데요. 그리고 마침내 그의 결단은 결실을 맺기 시작했죠. 1983년, 15%에 육박했던 인플레이션율은 3% 미만으로 떨어졌습니다. 그의 가장 위대한 업적은 바로 현대적 의미의 ‘중앙은행 신뢰성(central bank credibility)’을 확립한 것입니다. 그가 확립한 ‘신뢰’의 가장 위대한 가치는, 이제 연준이 더 적은 고통으로 인플레이션을 관리할 수 있게 되었다는 점입니다. 사람들이 ‘연준은 결국 물가를 잡을 것’이라고 믿기 시작하면, 연준이 금리를 조금만 올려도 그 효과가 경제 전체에 강력하게 작용하게 되죠. 오늘날의 중앙은행이 매번 20%까지 금리를 올리는 극약처방 없이도 경제를 운영할 수 있는 것은, 바로 볼커가 남긴 이 ‘신뢰’라는 무형의 자산 덕분입니다.


케인스가 정부의 ‘역할’을, 프리드먼이 ‘이론’을 제시했다면, 볼커는 중앙은행의 ‘신뢰’가 모든 것의 기반임을 피와 땀으로 증명했는데요. 그의 고통스러운 전쟁이 남긴 ‘신뢰’라는 유산은, 이후 모든 경제 위기 속에서 중앙은행이 기댈 수 있는 가장 단단한 반석이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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