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인들의 어깨 위에서, 최종화

거인들의 새로운 전쟁터: 2025년 연준의 딜레마

by 구미잉

1980년대, 폴 볼커라는 연준 의장은 살인적인 인플레이션을 잡기 위한 전쟁을 치렀습니다. 그 극심한 고통 끝에, 그는 '신뢰'라는 강력한 무기를 손에 넣었죠. 시장이 중앙은행을 믿기 시작한 겁니다. 이제 평화가 찾아온 걸까요? 안타깝게도 경제라는 세상에 영원한 평화는 없는 것 같습니다. 2020년대를 강타한 팬데믹과 지정학적 위기는, 과거와는 완전히 다른 종류의, 아주 복잡한 숙제를 들고 우리 앞에 나타났습니다.


이제 연준은 더 이상 한 명의 거인, 예컨대 볼커의 어깨 위에만 서 있을 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케인스, 프리드먼, 그리고 볼커라는 세 거인의 어깨 위에서 아슬아슬하게 균형을 잡아야 하는, 아주 어려운 과제에 직면하게 된 것이죠. 오늘 이야기는 바로 그 새로운 전쟁터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그렇다면 그 새로운 전쟁터는 어떤 모습일까요? 우선 2020년 팬데믹이 터졌을 때를 한번 떠올려 보시죠. 세상이 멈춰 섰습니다. 이때 각국 정부는 어떻게 했나요? 바로 케인스의 책을 다시 꺼내 들었습니다. 막대한 돈을 풀어 사람들의 주머니를 채워주고, 기업이 쓰러지지 않게 받쳐줬죠. 이건 마치 자동차가 멈춰 서자, 정부가 힘껏 ‘액셀’을 밟아준 것과 같습니다. 덕분에 대공황 같은 최악의 실업 사태는 막을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습니다. 액셀을 너무 세게 밟았더니, 차가 과열되기 시작한 겁니다. 바로 프리드먼이 평생에 걸쳐 경고했던 ‘인플레이션’이라는 열기였죠. 정부는 경제를 살리기 위해 계속 액셀을 밟고 싶은데, 연준은 과열된 엔진을 식히기 위해 ‘브레이크’를 밟아야 하는 상황이 온 겁니다. 정부와 중앙은행이 서로 다른 페달을 밟고 있는, 정책의 충돌이 발생한 거죠. 케인스의 유산이 프리드먼의 유산과 정면으로 부딪히기 시작한 순간입니다.


자, 그럼 브레이크를 밟아야 하는 연준은 어떻게 해야 할까요? 당연히 폴 볼커의 유산을 꺼내 들어야 합니다. “우리는 인플레이션을 잡을 겁니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요.” 이렇게 시장에 강력한 ‘신뢰’를 보여주며, 실제로 금리를 올리기 시작했죠. 하지만 여기서 또 다른 딜레마가 나타납니다. 지금의 연준은 볼커처럼 행동해야 하지만, 결코 볼커와 똑같이 행동할 수는 없다는 겁니다. 왜일까요? 오늘날의 경제는 볼커 시대보다 훨씬 더 많은 빚 위에 서 있기 때문입니다. 볼커처럼 금리를 20%까지 올리는 건, 이제 단순한 브레이크가 아니라 경제 전체를 날려버릴 수 있는 ‘핵무기’ 버튼을 누르는 것과 같습니다. 수많은 기업과 가계가 버텨내지 못할 테니까요. 즉, 볼커의 ‘정신’은 계승해야 하지만, 그의 ‘행동’을 그대로 따라 할 수는 없는, 아주 복잡한 상황에 놓인 것이죠.


이렇듯 2025년 현재의 연준은, 어느 한 명의 사상만을 정답으로 삼을 수가 없습니다. 경제가 멈춰 설 때는 정부의 역할을 인정하며 케인스의 손을 잡아야 하고(액셀), 경제가 과열될 때는 인플레이션의 위험을 경고한 프리드먼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하죠(브레이크). 그리고 이 모든 과정에서 고통이 따르더라도 물가 안정을 지키겠다는 볼커의 결단을 보여주며 ‘신뢰’를 지켜내야만 합니다(운전 실력).


결국 세 거인이 우리에게 남긴 것은 명쾌한 해답지가 아니었는데요. 서로 다른 유산들 사이에서 균형을 잡아야 하는, 영원히 끝나지 않을 숙제를 남긴 셈이죠. 2025년의 연준은 바로 이 세 거인의 어깨 위에서, 한 발이라도 삐끗하면 위기가 찾아오는 아슬아슬한 칼춤을 추고 있는 것 아닐까요? 그리고 그 춤은, 우리가 살아가는 이 시대가 계속되는 한, 결코 멈추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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