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의 마음을 읽는 법, 1부
2000년 3월, 한 투자자는 ‘닷컴’이라는 마법이 붙은 주식들이 끝없이 오르는 것을 보며 자신의 통찰력에 감탄했습니다. 20년이 흐른 2020년 3월, 또 다른 투자자는 팬데믹의 공포 앞에서 “더 늦기 전에 팔아야 한다”는 본능에 굴복하며 막대한 손실을 확정했죠. 그리고 시장은 그가 떠난 바로 그 지점에서 역사적인 반등을 시작했습니다.
이 두 이야기는 특별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아닌데요. 시장이라는 무대 위에서 우리 모두가 한 번쯤 겪어봤을 법한 보편적인 경험이죠. 우리는 시장이 합리적인 논리에 따라 움직인다고 믿고 싶어 하지만, 그 본질을 들여다보면 시장은 결국 그 안에 참여한 수많은 사람들의 탐욕과 공포, 희망과 착각이 모여 만들어내는 거대한 심리의 파동에 가깝습니다.
그렇다면 이 비합리적으로 보이는 시장의 마음을 읽어낼 방법은 없는 걸까요? 놀랍게도 그 해답은 경제학이 아닌 심리학에서 나왔는데요. 심리학자 대니얼 카너먼과 아모스 트버스키는 ‘인간은 합리적’이라는 전통 경제학의 대전제에 정면으로 의문을 제기했습니다. 그들이 개척한 ‘행동경제학’은 시장의 진짜 모습을 비추는 새로운 렌즈가 되어주었죠.
전통 경제학의 세상은 모든 정보를 완벽하게 처리해서 항상 최선의 결정을 내리는 ‘호모 이코노미쿠스’라는 가상의 인간이 지배합니다. 수학적으로는 참 우아한 모델이지만, 현실의 우리는 전혀 그렇지 않죠. 실제 시장은 실수투성이의 평범한 ‘인간’들로 가득 차 있습니다. 그래서 시장을 이해하려면, 먼저 우리 마음의 작동 원리부터 알아야 합니다.
카너먼과 트버스키가 제시한 ‘전망 이론(Prospect Theory)’은 우리 마음의 재무 지도를 새롭게 그려냈는데요. 이 이론의 핵심 중 하나는 바로 ‘준거점(Reference Point)’입니다. 사람은 절대적인 돈의 총액으로 기쁨이나 슬픔을 느끼지 않는다는 건데요. 대신 내가 산 가격, 즉 ‘본전’이라는 준거점을 기준으로 판단하죠. 10억 자산가에게 1천만 원의 이익은 그리 크지 않을 수 있지만, 그가 어제 1억에 산 주식이 오늘 9천만 원이 되었다면 ‘1천만 원 손실’이라는 사실에 밤잠을 설치게 됩니다. 모든 가치 판단이 얼마나 상대적이고 주관적인지를 보여주는 대목입니다.
그리고 이 이론의 심장이자, 수많은 투자 비극의 주범이 되는 개념이 바로 ‘손실 회피(Loss Aversion)’ 편향입니다. 간단한 실험을 하나 해볼까요? 제가 동전을 던져서 앞면이 나오면 당신이 이기고, 뒷면이 나오면 당신이 집니다. 만약 져서 10만 원을 잃는다면, 이겼을 때 최소 얼마를 따야 이 게임에 참여하시겠습니까? 대부분의 사람들은 최소 20만 원은 따야 한다고 답합니다. 수학적으로는 10만 원만 받아도 손해 볼 게 없는데도 말이죠.
이것이 바로 손실 회피의 강력함입니다. 우리 마음은 10만 원을 잃는 고통을, 10만 원을 버는 기쁨보다 약 2배에서 2.5배 더 크게 느끼도록 설계되어 있는데요. 어쩌면 이는 식량이 부족했던 원시 시대에, 가진 것을 잃는 것(손실)이 생존에 치명적이었기에 우리 DNA에 깊이 각인된 본능일지도 모르죠.
이 간단한 심리 하나가 시장의 수많은 미스터리를 풀어줍니다. 왜 우리는 손실 난 주식을 “본전만 오면…”이라며 팔지 못하고 끌어안을까요? 손실을 ‘확정’하는 고통을 피하고 싶기 때문입니다. 반대로 왜 이익이 난 주식은 서둘러 팔아버릴까요? 상대적으로 덜 강렬한 이익의 기쁨을 잃기 전에 빨리 챙기고 싶어서입니다. 시장이 폭락할 때 왜 그토록 빠르고 격렬하게 무너질까요? 추가적인 손실을 피하려는 공포가 모든 이성을 마비시키고 투매를 부추기기 때문입니다.
결국 시장을 움직이는 가장 근본적인 엔진 중 하나는 미래에 대한 냉철한 분석이 아니라, 손실의 고통을 피하려는 우리의 강력하고 비합리적인 본능인 셈이죠. 이토록 강력한 감정의 엔진이, 만약 ‘내가 믿고 싶은 것만 보려는’ 이성의 필터와 결합된다면 시장에서는 또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