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는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온 사고가 아니었죠. 그것은 10여 년에 걸친 정책적 선택과 구조적 변화, 그리고 경제가 영원히 안정될 것이라는 위험한 믿음이 빚어낸 필연적인 귀결이었습니다. 위기의 씨앗은 2000년대 초반, 닷컴 버블 붕괴의 잿더미 속에서 조용히 뿌려졌습니다. 닷컴 버블 붕괴와 9/11 테러라는 두 차례의 거대한 충격에 맞서, 앨런 그린스펀이 이끌던 연준은 경기 침체를 막기 위해 금리를 1%라는 역사적인 수준까지 낮추며 시장에 막대한 유동성을 쏟아부었죠.
이러한 정책의 배경에는 ‘대안정기(The Great Moderation)’라는 거대한 믿음이 있었습니다. 1980년대 중반부터 약 20년간, 경제의 변동성이 크게 줄어들자 사람들은 이제 극심한 경기 침체는 과거의 유물이 되었다고 믿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하이먼 민스키가 경고했듯, 안정은 스스로 불안정의 씨앗을 품고 있었죠. 장기간의 안정은 위험에 대한 경계심을 무디게 만들었고, 닷컴 버블로 갈 곳을 잃은 막대한 유동성은 새로운 투자처를 찾아 흘러 들어갔습니다. 그 종착지는 바로 미국의 주택 시장이었습니다.
월스트리트는 이 유동성을 주택 시장으로 보내는 정교한 ‘금융 공장’을 만들어냈습니다. 이 공장의 작동 원리는 ‘증권화’라는 연금술이었죠. 먼저, 공장의 1층에서는 수천 개의 주택담보대출(모기지)이라는 ‘원재료’를 사들입니다. 2층에서는 이 원재료들을 한데 섞고 잘게 썰어 ‘주택저당증권(MBS)’이라는 새로운 ‘가공식품’을 만들어내죠. 여기서 그치지 않습니다. 3층에서는 잘 팔리지 않는 위험한 부위들만 다시 모아 ‘부채담보부증권(CDO)’이라는 초고도로 가공된 ‘즉석식품’을 만듭니다. 마지막으로, 이 위험한 즉석식품에 ‘신용부도스와프(CDS)’라는 ‘안전인증’ 스티커를 붙여 전 세계 투자자들에게 판매합니다. 이 공장의 가장 치명적인 결함은 ‘책임의 단절’이었습니다. 대출을 내준 은행부터 마지막 투자자에 이르기까지, 사슬의 어느 누구도 최종 부실에 대해 책임지지 않는 구조였죠. 모두가 수수료 잔치에만 혈안이 된 사이, 대출의 질은 끝없이 추락했습니다. 소득도, 직업도, 자산도 없는 사람(NINJA)에게까지 대출이 남발되었습니다.
이 위험한 공장이 쉼 없이 돌아갈 수 있었던 데에는 시스템의 ‘공범’들이 있었습니다. 투자은행은 공장의 설계자였고, 신용평가사들은 위험한 상품에 ‘AAA’라는 최고 등급을 남발하며 문지기 역할을 포기했죠. 상품을 만드는 투자은행이 평가 수수료를 내는 구조였으니, 평가사들은 ‘황금알을 낳는 거위’의 배를 가를 수 없었던 겁니다. 보험사 AIG는 충분한 담보도 없이 CDS라는 보험을 팔며 시스템 전체에 보이지 않는 시한폭탄을 설치했습니다. 이 불경스러운 삼위일체 속에서 ‘미국 주택 가격은 절대 전국 단위로 하락하지 않는다’는 새로운 신화가 탄생했고, 시장은 집단적인 광기에 휩싸였습니다.
영원할 것 같았던 파티는 2006년부터 서서히 막을 내리기 시작했습니다. 주택 가격 상승세가 꺾이고 서브프라임 모기지 연체율이 치솟기 시작했죠. 2008년 3월, 투자은행 베어스턴스가 파산 직전에 몰리자 연준은 구제금융을 제공하며 급한 불을 껐습니다. 하지만 이는 거대한 빙산의 일각에 불과했습니다. 2008년 9월 15일, 또 다른 투자은행 리먼 브라더스가 파산을 신청하자 금융 시스템은 그대로 심장마비를 일으켰습니다. 금융기관들은 서로가 얼마나 위험에 노출되어 있는지 알 수 없게 되자 신뢰가 증발했고, 돈의 흐름이 완전히 멈춰버리는 ‘신용 경색’이 발생한 겁니다. 이는 마치 인체의 혈액 순환이 멈춘 것과 같았죠. 이 충격은 금융 시스템의 가장 안전하다고 여겨졌던 머니마켓펀드(MMF) 시장의 뱅크런 사태와 AIG의 구제금융으로 이어졌고, 월스트리트에서 시작된 위기는 순식간에 전 세계 실물 경제로 퍼져나가 대공황 이후 최악의 경기 침체를 불러왔습니다.
시스템 붕괴라는 절체절명의 위기 앞에서 정책 당국은 과거에는 상상할 수 없었던 극약 처방을 내놓았습니다. 은행에 직접 자본을 투입하는 구제금융(TARP), 금리를 제로 수준으로 낮추는 제로금리정책(ZIRP), 그리고 중앙은행이 직접 돈을 찍어 자산을 사들이는 양적완화(QE)가 그것이었죠. 이 ‘바주카포’ 정책들은 금융 시스템의 완전한 붕괴를 막았지만, 깊은 유산을 남겼습니다. 바로 ‘대마불사(Too Big to Fail)’라는 도덕적 해이와, 위기 때마다 중앙은행이 구원투수로 나설 것이라는 ‘중앙은행 만능주의’입니다. 2008년 이후, 위험은 규제가 강한 은행을 떠나 규제가 덜한 ‘그림자 금융’ 영역으로 옮겨갔을 뿐이라는 지적이 많습니다. 오늘날 기업 대출을 묶어 만든 부채담보부대출(CLO)은 2008년의 CDO와 놀랍도록 유사한 구조를 가지고 있죠. 2008년의 위기는 우리에게 레버리지의 위험성과 시스템의 보이지 않는 배관 문제를 이해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가르쳐주었습니다. 우리는 과거의 교훈을 진정으로 배웠을까요? 아니면 그저 다음 위기를 향해 다른 모습으로 달려가고 있을 뿐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