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의 분열, 유럽 재정위기

by 구미잉

2011년 유럽을 휩쓴 국가 부채 위기는 단순한 금융 충격이 아니었죠. 그것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라는 거대한 드라마의 필연적인 2막이었으며, 더 근본적으로는 유로존이라는 단일 통화 체제가 탄생부터 안고 있던 구조적 모순이 폭발한 사건이었는데요. 미국에서 시작된 불길이 대서양을 건너 유럽 대륙에 깊은 상처와 정치적 균열을 남겼고, 그 파장은 오늘날 우리가 마주한 글로벌 부채 문제와 지정학적 갈등의 지형을 이해하는 데 결정적인 단서를 제공합니다.


유로존의 근본적인 문제는 ‘하나의 옷을 입은 각기 다른 체형의 사람들’이라는 비유로 설명할 수 있습니다. 유로라는 단일 통화는 독일처럼 건장하고 튼튼한 경제 체력에 맞춰진 고급 정장과 같았죠. 이 옷을 그리스나 스페인처럼 체형이 다른 국가들이 억지로 입으면서 처음에는 편안함을 느꼈습니다. 독일의 높은 신용도 덕분에 모두가 낮은 금리로 돈을 빌릴 수 있는 ‘저금리 파티’가 열렸으니까요. 이 값싼 자본은 남유럽 국가들로 흘러 들어가 스페인과 아일랜드 등지에서 거대한 부동산 버블을 키웠습니다. 스페인의 경우 2000년부터 7년간 지어진 신규 주택이 독일, 프랑스, 영국 3국의 건설량을 합친 것보다 많을 정도였으니까요.


하지만 2008년이라는 외부 충격이 닥치자, 이 멋진 옷은 몸을 조이는 족쇄로 변해버렸습니다. 위기에 빠진 국가는 보통 자국 통화 가치를 떨어뜨려 수출품 가격을 싸게 만들거나, 중앙은행이 돈을 찍어 정부를 돕는 비상조치를 취하곤 하죠. 하지만 유로존 국가들은 이 두 가지 핵심적인 무기를 모두 빼앗긴 상태였습니다. 자신의 몸이 아픈데, 스스로 옷을 벗거나 고쳐 입을 권한이 없었던 셈입니다.


도화선에 불을 붙인 것은 2008년 월스트리트의 불길이었습니다. 유럽의 대형 은행들도 미국의 서브프라임 모기지 상품에 깊숙이 노출되어 있었고, 시스템 붕괴를 막기 위해 각국 정부는 천문학적인 구제금융을 투입했죠. 이 과정에서 결정적인 전환이 일어났는데요. 은행의 부실이라는 ‘민간의 빚’이 정부의 구제금융을 통해 ‘국가의 빚’으로 이전된 겁니다. 시장의 관심은 이제 은행의 건전성에서 각국 정부의 재정 건전성으로 옮겨가기 시작했습니다.


2009년 10월, 그리스의 새 정부가 이전 정부의 재정적자 통계가 거짓이었음을 폭로하면서 시장은 핵폭탄급 충격을 받았습니다. 이는 단순한 재정 악화가 아니라, 유로존 회원국의 공식 통계에 대한 신뢰 자체가 무너진 사건이었기 때문이죠. 시장은 패닉에 빠졌고, 그리스에서 시작된 불길은 ‘PIGS(포르투갈, 이탈리아, 그리스, 스페인)’라 불리던 남유럽 국가들로 삽시간에 번져나갔습니다. 각국의 국채 금리는 폭등했고, 자력으로 빚을 갚는 것이 불가능해지면서 차례로 구제금융을 신청하는 도미노 현상이 발생했습니다. 10년간 지속되었던 저금리 파티는 악몽과 같은 부채의 숙취로 막을 내리고 있었습니다.


위기의 해법을 둘러싸고 유럽은 극심한 내분에 휩싸였습니다. 채권국인 독일은 ‘도덕적 해이’를 우려하며 방만한 재정을 운용한 국가들이 스스로 허리띠를 졸라매는 혹독한 긴축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죠. 반면, 채무국인 남유럽 국가들은 긴축이 오히려 경제를 망가뜨리는 ‘죽음의 소용돌이’라며 유럽 차원의 연대를 통한 성장을 요구했습니다. 이 갈등 속에서 유럽연합, 유럽중앙은행(ECB), 국제통화기금(IMF)으로 구성된 ‘트로이카’가 구제금융의 대가로 가혹한 긴축 정책을 강요했고, 남유럽은 ‘잃어버린 10년’이라 불리는 깊은 침체의 늪에 빠졌습니다. 그리스의 청년 실업률은 50%를 넘나들었고, 사회는 극심한 불안에 휩싸였죠.


2012년 여름, 스페인과 이탈리아마저 무너질 위기에 처하며 유로존 붕괴는 시간문제처럼 보였습니다. 이 절체절명의 순간, 마리오 드라기 당시 ECB 총재는 역사에 남을 한마디를 던집니다. 유로를 지키기 위해 “무엇이든 하겠다(Whatever it takes)”고요. 이 발언은 ECB가 유로존 붕괴를 막기 위해 무제한적인 유동성을 공급할 것이라는 강력한 신호를 보냈고, 시장의 패닉을 단숨에 잠재웠습니다. 유로존은 붕괴의 벼랑 끝에서 기사회생했지만, 위기는 깊은 상처를 남겼습니다. 남유럽의 청년 세대는 ‘잃어버린 세대’가 되었고, 긴축에 대한 반감은 브렉시트의 씨앗이 된 반(反) EU 정서와 포퓰리즘을 키웠죠.


유럽 재정위기는 우리에게 개별 국가의 펀더멘털뿐만 아니라, 그 국가가 속한 ‘시스템’의 구조적 리스크를 이해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가르쳐줍니다. 팬데믹 이후 전 세계 국가 부채가 급증한 지금, 유로존의 구조적 딜레마는 여전히 해결되지 않았습니다. 10년 전보다 훨씬 더 많은 빚을 짊어진 세계 경제는, 또 다른 충격이 닥쳤을 때 과연 유럽이 겪었던 분열의 고통을 피할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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