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의 정지, 팬데믹 쇼크와 무제한 양적완화

by 구미잉

2020년 팬데믹은 단순한 보건 위기를 넘어, 현대 경제사에 전례 없는 족적을 남긴 하나의 분기점이었는데요. 정책 당국이 의도적으로 세계 경제를 ‘인위적인 코마(artificial coma)’ 상태에 빠뜨린 최초의 사건이었죠. 2008년 금융위기가 시스템 내부의 균열에서 비롯된 심장마비였다면, 2020년의 위기는 외부 충격으로 인해 경제의 모든 혈관을 일시에 마비시킨 ‘대정지(The Great Standstill)’였습니다. 이 위기는 지난 40년간 이어져 온 거시경제의 패러다임을 송두리째 뒤흔들었죠.


2020년 3월, 세계 경제는 문자 그대로 멈춰 섰습니다. 각국 정부가 시행한 봉쇄(Lockdown) 조치는 공장 가동을 중단시키고(공급 충격), 사람들의 발을 묶어 소비를 불가능하게 만들었죠(수요 충격). 미국의 2020년 2분기 GDP는 연율 기준 -31.7%라는 경이적인 감소율을 기록했고, 실업률은 불과 두 달 만에 3.5%에서 14.7%로 치솟았습니다. 이 급격한 동결은 금융 시장을 역사상 가장 빠른 속도의 패닉으로 몰아넣었습니다. 투자자들은 주식, 회사채는 물론 가장 안전한 자산인 미국 국채까지 모든 것을 팔아치우고 오직 현금, 즉 달러만을 갈구하는 극단적인 ‘현금 확보 경쟁(Dash for Cash)’에 나섰습니다. 금융 시스템의 심장과도 같은 국채 시장마저 마비되는, 2008년보다 더 심각한 유동성 위기였죠.


금융 시스템의 심장이 멎을 위기에 처하자 정책 당국은 역사상 가장 빠르고 강력한 대응에 나섰습니다. 연준은 기준금리를 제로로 낮추고 “필요한 만큼” 국채를 사들이겠다는 ‘무제한 양적완화’를 선언했죠. 여기서 그치지 않고 투자등급 회사채까지 직접 매입하며 사실상 금융시장의 ‘최종 구매자’ 역할을 자처했습니다. 연준이 금융 시스템의 혈관에 무제한으로 수혈을 하는 동안, 정부는 경제의 심장인 가계와 기업에 직접 피를 공급했습니다. 2.2조 달러 규모의 ‘CARES Act’는 대부분의 국민에게 현금을 직접 지급하고, 실업수당을 대폭 확대했죠. 2008년의 돈 풀기가 은행이라는 저수지에 물을 채우는 것이었다면, 2020년은 정부라는 소방 호스를 통해 각 가정의 마당에 직접 물을 뿌려준 것과 같았습니다. 정부가 막대한 빚을 내 돈을 쓰고, 중앙은행이 그 빚을 사들이는 이 방식은 수십 년간 이론 속에만 존재했던 ‘헬리콥터 머니’를 현실로 만들었습니다.


이 강력한 처방은 대공황의 재발을 막았지만, 새로운 부작용을 낳았습니다. 정책으로 부양된 막대한 수요가 마비된 공급망과 충돌하면서 40년간 잠들어 있던 인플레이션이라는 괴물을 깨운 겁니다. 정책 당국은 초기에 이를 ‘일시적’이라고 오판했지만, 임금 상승과 맞물린 물가는 끈질기게 이어졌죠. 또한, 자산 가격은 V자로 반등하며 주식, 부동산, 암호화폐 등 모든 것의 가격이 오르는 ‘모든 것의 버블(Everything Bubble)’ 현상이 나타났습니다. 이 과정에서 자산가와 기술 부문은 빠르게 회복한 반면, 저임금 서비스직은 큰 타격을 입는 ‘K자형 회복’이라는 사회적 양극화가 심화되었습니다.


결국 인플레이션을 잡기 위해 연준은 2022년부터 1980년대 ‘볼커 쇼크’를 연상시키는 공격적인 금리 인상에 나설 수밖에 없었는데요. 이로써 시장이 흔들릴 때마다 중앙은행이 구원투수로 나설 것이라는 ‘중앙은행 만능주의’ 시대는 막을 내렸죠. 팬데믹 대응으로 급증한 정부 부채는 이제 고금리라는 새로운 환경과 만나 시스템의 가장 취약한 고리가 되었습니다. 2020년이라는 거울은 우리에게 ‘저물가-저금리’의 시대가 끝나고, 더 높은 변동성과 불확실성을 특징으로 하는 새로운 시대가 시작되었음을 비춰주고 있습니다. 전례 없는 위기에 맞선 전례 없는 정책이 남긴 이 거대한 청구서를, 우리는 과연 감당할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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