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의 환호 뒤에 가려진 새로운 시대의 서막

by 구미잉

시장은 숨을 죽이고 있었죠. 전 세계 투자자들이 와이오밍 주의 작은 휴양지, 잭슨홀만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과연 파월 의장은 시장의 기대대로 금리 인하의 문을 열어줄 것인가, 아니면 인플레이션이라는 명분 아래 다시 한번 매파적인 모습을 보일 것인가. 시장은 9월 금리 인하를 70% 이상 기대하면서도, 한편으로는 파월이 시장의 기대를 꺾어버릴지 모른다는 불안감을 떨치지 못하고 있었는데요.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파월은 시장이 기대했던 것보다 훨씬 더 강력한 ‘비둘기’의 날갯짓을 보여주었습니다. 연설이 끝나자마자 시장은 그야말로 환호했죠. S&P 500 지수는 1.5% 넘게 급등하며 사상 최고치를 경신했고, 달러는 급락했으며, 국채 금리는 뚝 떨어졌습니다. 시장의 기대에 부응한 수준이 아니라, 기대를 훌쩍 뛰어넘는 선물을 안겨준 셈입니다. 하지만 이 단순한 환호 뒤에, 이번 연설이 사실은 훨씬 더 복잡하고 도전적인 새로운 경제 현실의 서막을 열었을 수 있다는 질문이 숨어 있습니다.


시장을 이토록 열광시킨 파월의 메시지는 무엇이었을까요? 가장 결정적인 한 문장은 바로 이것이었습니다. “인플레이션 리스크는 상방으로, 고용 리스크는 하방으로 기울어져 있어 도전적인 상황이다.” 지난 1년 내내 ‘인플레이션’이라는 단어만 외치던 연준이, 이제 ‘고용’이라는 또 다른 목표를 바라보기 시작했음을 공식적으로 선언한 겁니다. 마치 외과의사가 암세포(인플레이션) 제거에만 집중하다가, 이제 환자의 전반적인 체력(고용)도 함께 돌봐야 할 시점이라고 말한 것과 같죠. 파월은 현재의 노동 시장을 ‘기묘한 균형(curious kind of balance)’ 상태라고 표현했습니다. 겉보기에는 실업률도 낮고 괜찮아 보이지만, 신규 고용 증가세가 급격히 둔화되고 있어 마치 잘 쌓아 올린 젠가 블록처럼 위태로운 균형을 이루고 있다는 의미입니다. 작은 충격에도 와르르 무너질 수 있으니, 미리 ‘보험’을 들어야 한다는 논리를 편 것이죠. 관세로 인한 물가 상승 압력에 대해서도, 이는 지속적인 추세가 아니라 ‘일회성 가격 수준의 변화’ 일뿐이라며 선을 그었습니다. 고용이 흔들리는 상황에서는 어느 정도의 물가 상승은 눈감아 줄 수 있다는 뜻으로 해석되기에 충분했습니다. 시장은 이 메시지를 정확하게 읽어냈고, 연설 직후 9월 금리 인하 확률은 73%에서 90%에 육박할 정도로 치솟았습니다.


하지만 파월의 연설에서 정말 중요한 부분은, 그가 말한 것보다 말하지 않은 것에 있을 수 있습니다. 연준은 단 한 번도 공식 목표를 2%에서 3%로 바꾼다고 말한 적이 없죠. 하지만 그들의 행동과 말의 뉘앙스는 시장으로 하여금 "혹시 2%는 명분일 뿐, 실제로는 3% 근처에서 만족하려는 것 아닐까?"라는 의심을 품게 만들고 있습니다. 연준이 ‘2% 목표’를 절대 포기할 수 없는 이유는 그것이 지난 40년간 쌓아 올린 중앙은행의 ‘신뢰’라는 댐 그 자체이기 때문인데요. 만약 연준이 목표를 3%로 올린다고 선언하는 순간, 이 댐에 균열이 가기 시작하고 기대 인플레이션이 통제 불능 상태에 빠질 수 있죠. 이것이 연준이 가장 두려워하는 악몽입니다. 하지만 동시에, 연준은 ‘3% 현실’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강력한 제약들에 둘러싸여 있습니다. 팬데믹 이후 천문학적으로 늘어난 정부 부채는 약간의 인플레이션이 빚의 실질 가치를 깎아주기를 바라고 있고, 탈세계화와 노동력 부족 같은 구조적 요인들은 과거와 달리 비용을 계속해서 밀어 올리고 있죠. 이런 환경에서 억지로 2%를 맞추려면, 경제에 상당한 무리를 주는 강력한 긴축이 필요할 수 있습니다. 결국 연준은 ‘2% 목표’라는 깃발은 절대 내리지 않으면서, 실제 정책 운용은 3% 근처의 물가에 훨씬 더 관대해지는 ‘조용한 목표 변경(stealth target change)’을 하고 있다고 보는 것이 가장 합리적인 해석일 겁니다.


연준이 3% 인플레이션을 용인하는 세상은 단순히 숫자가 1% 포인트 변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지난 수십 년간 당연하게 여겨왔던 투자의 문법 자체가 바뀌는 거대한 패러다임의 전환을 의미하는데요. 가장 큰 변화는 ‘고금리의 일상화’입니다. 목표 인플레이션율이 2%에서 3%로 올라간다는 것은, 경제의 ‘기본 물가 상승 속도’가 빨라진다는 뜻이죠. 그렇다면 경제가 과열되지도 침체되지도 않는 ‘평상시의 금리 수준’, 즉 중립금리 자체도 한 단계 올라갈 수밖에 없습니다. 마치 실내 온도를 20°C에서 23°C로 높여 맞추려면, 평상시에 켜두는 히터의 설정 온도 자체도 올려야 하는 것과 같은 이치죠. 이 ‘고금리의 일상화’는 기업, 가계, 투자 시장의 모든 규칙을 바꿉니다. 저금리라는 순풍 덕에 빚으로 연명하던 ‘좀비 기업’들은 더 이상 높은 이자 비용을 감당하지 못하고 쓰러지게 될 겁니다. 가계 역시 ‘빚의 파티’를 끝내고 허리띠를 졸라매기 시작하겠죠. 투자 시장에서는 ‘주식 외에는 대안이 없다(TINA)’는 시대가 가고, 4~5%의 이자를 주는 안전한 국채나 예금이 ‘합리적인 대안(TARA)’으로 떠오릅니다. 이는 주식 시장으로 흘러 들어갈 자금의 일부를 흡수하며, 시장 전체의 밸류에이션을 낮추는 역할을 하게 될 가능성이 높죠.


시장은 잭슨홀에서 단기적인 금리 인하라는 달콤한 소식에 환호했습니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지난 40년간 이어져 온 ‘저물가-저금리’ 시대가 끝나고, 훨씬 더 높은 변동성과 금리 수준을 특징으로 하는 새로운 시대가 시작되었음을 파월이 암시했다는 더 큰 그림이 숨어 있는 것으로 보이는데요. 그의 연설은 단순히 다음 FOMC에 대한 힌트가 아니라, 앞으로 우리가 살아갈 세상의 새로운 규칙을 설명하는 서문이었던 셈이죠. 우리는 과연 이 새로운 시대의 규칙을 제대로 이해하고, 낡은 지도를 버릴 준비가 되어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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