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러와 금의 불안한 동행

by 구미잉

경제학 교과서를 펼쳐보면 아주 익숙한 공식이 하나 나오죠. 미국 달러와 금은 서로 반대 방향으로 움직이는 시소와 같다는 이야기 말입니다. 그런데 요즘 글로벌 금융 시장은 이 오랜 공식을 비웃기라도 하듯, 아주 기이한 풍경을 보여주고 있는데요. 달러가 다른 주요 통화들을 압도하며 강세를 보이는 동시에, 금 가격 역시 사상 최고치를 향해 달려가는, 좀처럼 이해하기 힘든 동행이 나타나고 있으니까요. 이건 단순히 시장의 변덕이라고만 치부하기엔 조금 이상하지 않으신가요? 어쩌면 우리는 지금, 이 현상을 통해 우리가 돈이라고 믿어왔던 모든 ‘종이 화폐(Fiat Money)’ 시스템 자체에 대한 시장의 근본적인 신뢰가 흔들리고 있다는 아주 중요한 신호를 보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원래 금과 달러가 시소처럼 움직였던 이유는 아주 간단했습니다. 금은 그 자체로 이자를 주지 않는 자산이죠. 반면 달러는 국채와 같은 자산에 투자해 이자를 받을 수 있습니다. 이걸 ‘이자 주는 예금 통장(미 국채)’과 ‘금고 속 금괴(금)’에 비유해 볼 수 있는데요. 만약 은행이 높은 이자를 준다면, 굳이 이자 한 푼 안 나오는 금괴를 금고에 넣어둘 이유가 없지 않겠습니까? 금을 보유하는 것의 기회비용이 커지는 셈이죠. 특히 물가 상승률을 감안한 실질금리가 높을수록 달러 자산의 매력은 더욱 커졌고, 금은 자연스레 외면받았습니다. 하지만 반대로 실질금리가 마이너스로 떨어지는 세상이 온다면 어떨까요? 예금 통장에 돈을 넣어두는 것만으로도 내 돈의 가치가 줄어드는 상황이라면, 차라리 이자는 없지만 가치가 보존되는 금괴가 훨씬 더 나은 선택지가 될 수 있는 겁니다.


그런데 지금 시장은 이 단순한 셈법이 통하지 않고 있습니다. 이 수수께끼를 풀기 위해, 우리는 잠시 역사를 들여다볼 필요가 있습니다. 지금과 놀랍도록 닮아있는 시기, 바로 1970년대 스태그플레이션의 시대 말이죠. 당시 미국은 베트남 전쟁으로 막대한 재정 적자에 시달렸고, 결국 1971년 닉슨 대통령은 달러를 금으로 바꿔주겠다는 약속을 일방적으로 폐기하는 ‘닉슨 쇼크’를 단행합니다. 달러의 가치가 금이 아닌, 오직 미국 정부의 ‘신용’에만 의존하게 된 인류 역사상 최초의 실험이 시작된 순간이었죠. 그 결과는 어땠을까요? 달러 시스템에 대한 믿음이 무너지자, 시장의 불신은 걷잡을 수 없는 인플레이션과 경기 침체로 이어졌고, 사람들은 종이 화폐의 가치 하락을 피하기 위해 필사적으로 금으로 도피했습니다. 당시 온스당 35달러였던 금 가격은 10년도 안 되어 800달러를 돌파하며 폭등했죠.


물론 역사는 똑같이 반복되지 않습니다. 1970년대의 위기가 ‘인플레이션’ 그 자체에 대한 공포였다면, 지금 우리가 마주한 위기의 본질은 ‘부채’라는 더 근본적인 문제에서 비롯됩니다. 2008년 금융위기와 코로나 팬데믹을 거치며 미국, 유럽, 일본 등 전 세계 주요국들은 역사상 유례없는 빚더미 위에 올라앉았습니다. 이 막대한 빚은 언젠가 더 많은 돈을 찍어내 갚아야 할 것이라는 불안감, 즉 미래의 화폐가치 하락에 대한 우려를 낳고 있죠. 여기에 더해, 단기적인 경기 부양을 위해 중앙은행의 독립성을 흔드는 정치권의 모습은 ‘돈의 가치를 지키는 최후의 보루’에 대한 믿음마저 훼손시키고 있습니다.


자, 이제 현재의 기이한 현상이 조금씩 이해되기 시작하실 텐데요. ‘강한 달러’와 ‘강한 금’의 동행은 시장이 두 가지 다른 종류의 공포에 동시에 대비하고 있다는 신호인 셈입니다.


첫째, ‘강한 달러’는 단기적인 위기에 대한 공포를 반영합니다. 글로벌 경제에 충격이 오면, 투자자들은 일단 가장 안전하고 유동성이 풍부한 피난처를 찾습니다. 마치 폭풍우가 몰아칠 때 수많은 배들 중에서 가장 덜 가라앉을 것 같은 가장 큰 배로 옮겨 타는 것과 같죠. 지금 달러는 다른 통화들에 비해 ‘가장 덜 가라앉는 배’로서의 역할을 하고 있는 겁니다.


둘째, ‘강한 금’은 장기적인 시스템 불신을 반영합니다. 만약 폭풍우가 너무 거세서 가장 큰 배마저 침몰할 수 있다는 공포가 생긴다면 어떨까요? 사람들은 배에서 뛰어내려 아예 다른 종류의 탈출 수단, 즉 ‘유일한 구명보트’를 찾게 될 겁니다. 금은 특정 국가나 정부의 신용에 의존하지 않는, 시스템 외부에 존재하는 바로 그 구명보트의 역할을 합니다.


결론적으로, ‘강한 달러’와 ‘강한 금’의 동행은 투자자들이 두 가지 다른 시간대의 리스크를 동시에 고려하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단기적인 금융 충격에 대한 우려는 가장 유동성이 높은 피난처인 달러로 향하게 하고, 동시에 전 세계적인 부채와 통화 정책에 대한 장기적인 불신은 시스템을 초월한 가치 저장 수단인 금으로 눈을 돌리게 하는 것이죠. 이 이례적인 현상은 과거의 공식만으로는 설명하기 어려운 새로운 국면에 진입했음을 시사합니다. 그리고 이는 우리에게 부채와 불확실성의 시대에 ‘안전자산’의 진정한 의미는 무엇인지,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고 있는 것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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