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맹은 없다: ‘각자도생’의 시대가 온다

by 구미잉

최근 일본이 미국과의 관세 협상 최종안에 서명했다는 뉴스가 들려왔죠. 유럽에 이어 일본까지, 미국의 높은 관세 장벽 앞에서 각자 살길을 찾아 나서는 모습입니다. 이런 풍경을 보고 있자니, 어쩌면 우리는 더 이상 '동맹'이라는 단어가 예전과 같은 무게를 갖지 못하는, 아주 낯선 시대에 들어서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바로 모든 국가가 공동의 이익보다는 자국의 생존을 최우선으로 생각하는 ‘각자도생(各自圖生)’의 시대 말입니다.


과거 냉전 시절만 해도 세상은 참 단순했습니다. 미국과 소련이라는 두 거대한 축을 중심으로 세계가 양분되어 있었고, 대부분의 국가는 어느 한쪽에 속해 그 팀의 규칙을 따르면 되었죠. 이를 '양극 체제'라고 부릅니다. 소련이 무너진 후에는 미국이라는 유일한 패권 국가가 국제 질서의 규칙을 만들고 집행하는 '단극 체제', 이른바 '팍스 아메리카나(Pax Americana)'의 시대가 열리기도 했습니다. 물론 그 안에도 갈등은 있었지만, 적어도 길을 잃었을 때 바라볼 수 있는 거대한 등대는 존재했던 셈입니다. 하지만 지금은 어떤가요? 여러 개의 등대가 서로 다른 빛을 내뿜고, 심지어 가장 큰 등대마저 자신의 불빛만 좇으라고 외치는, 방향을 가늠하기 힘든 안갯속과도 같지 않으신가요?


이러한 ‘각자도생’의 시대에 국가들이 왜 합리적인 판단에도 불구하고 집단적으로는 더 나쁜 결과를 맞게 되는지를 설명하는 데 아주 유용한 이론이 하나 있습니다. 바로 게임 이론의 ‘죄수의 딜레마’인데요. 두 명의 공범이 서로를 믿고 끝까지 침묵하면(협력) 둘 다 1년이라는 가벼운 벌을 받지만, 한 명이 동료를 배신하고 자백하면(배신) 자신만 풀려나고 침묵한 동료는 10년이라는 무거운 벌을 받게 되는 상황입니다. 만약 둘 다 서로를 배신하면 둘 다 5년형을 받게 되죠. 이 상황에서 각자에게 가장 이성적인 선택은 상대가 어떻게 하든 일단 배신하고 보는 것입니다. 그 결과, 둘 다 협력했을 때보다 훨씬 나쁜 결과(5년형)를 맞게 되죠.


지금 국제 관계가 꼭 이와 같습니다. 미국의 관세 압박에 맞서 유럽, 일본, 한국이 함께 뭉쳐 공동으로 대응했다면(협력) 더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결국 각국은 다른 나라가 먼저 미국과 손을 잡을지 모른다는 불신 속에서, ‘나만 뒤처질 수 없다’는 생각에 앞다투어 개별 협상에 나섰죠(배신). 그 결과 미국의 정책은 성공했고, 동맹이라는 이름 아래 모인 국가들의 공동 협상력은 와해되었습니다.


그렇다면 대체 누가 이런 복잡하고 무질서한 판을 만든 것일까요? 아이러니하게도 그 설계자는 과거 질서의 수호자였던 미국 자신입니다. ‘미국 우선주의(America First)’라는 기치 아래, 미국은 더 이상 세계의 안정과 번영이라는 공공재를 제공하는 데 관심이 없습니다. 오히려 자국의 막강한 힘을 다른 나라들을 압박하고 더 많은 것을 얻어내기 위한 ‘무기’로 사용하기 시작했죠. 여기서 중요한 것은 미국의 힘이 약해진 것이 아니라, 그 힘을 쓰는 방식이 근본적으로 달라졌다는 점입니다.


과거 미국이 가진 달러 패권, 군사력, 기술력이라는 강력한 힘은 전 세계 동맹국들이 함께 사용할 수 있는 일종의 컴퓨터 운영체제(OS)와도 같았습니다. 모두가 이 윈도우나 맥 OS라는 시스템 안에서 안정적으로 각자의 프로그램을 돌리며 번영을 누렸죠. 하지만 지금 미국은 그 힘을 오직 자신의 이익만을 위해 사용하는 폐쇄적인 애플리케이션(App)처럼 쓰고 있습니다. 달러 시스템 접근권, 안보 공약, 기술 통제 등 과거에는 시스템을 유지하기 위한 기능들이었던 것들이, 이제는 다른 나라를 길들이기 위한 협상의 지렛대로 활용되고 있는 겁니다. 다른 나라들이 이 새로운 게임의 방식에 효과적으로 저항하지 못하고 결국 ‘각자도생’의 길을 택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관세 협상에서 시작된 각자도생의 경쟁은 이제 다음 단계로 넘어가고 있습니다. 바로 ‘환율 전쟁’이죠. 각국이 수출에서 조금이라도 더 유리한 고지를 점하기 위해 경쟁적으로 자국 통화의 가치를 떨어뜨리는 ‘바닥을 향한 경주’가 시작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습니다. 1930년대 대공황 시기, 이러한 경쟁적 평가절하가 어떻게 전 세계 무역을 붕괴시키고 모두를 더 깊은 수렁으로 몰고 갔는지 우리는 역사를 통해 똑똑히 봐왔습니다.


오늘 이야기가 무척 길었는데요. 흐름을 정리해 보죠. 과거의 굳건했던 동맹이라는 질서는 희미해지고, 이제 모든 국가는 자국의 이익을 위해 홀로 싸워야 하는 ‘각자도생’의 시대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듯합니다. 과거 질서의 설계자였던 미국이 스스로 그 판을 흔들면서, 관세에서 시작된 이 치열한 생존 경쟁은 이제 환율이라는 더 위험한 전장으로 옮겨갈 채비를 하고 있죠. 이 격랑의 시대에, 과연 우리는 어떤 항해술을 준비해야 하는 것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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