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리의 중력을 벗어난 자들
최근 발표된 QCEW 고용 지표 쇼크로, 시장은 이제 연준의 금리 인하를 기정사실로 받아들이는 분위기죠. 실물 경제와 고용 시장이 드디어 높은 금리의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있다는 신호로 해석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참 이상한 일이 있습니다. 대부분의 기업들이 금리라는 무거운 중력에 짓눌려 신음하는 동안, 유독 빅테크 기업들만큼은 연일 신고가를 경신하며 마치 다른 세상에 사는 것처럼 보이니까요.
전통적으로 금리는 '금융의 중력'이라고 불렸습니다. 중력이 강해지면(금리 인상) 모든 것들이 땅으로 끌려 내려오듯, 기업들의 투자와 소비는 위축될 수밖에 없었죠. 하지만 지금 우리는 이 보편적인 법칙이 더 이상 통하지 않는, 아주 특별한 기업들을 목격하고 있습니다. 마치 스스로의 힘으로 중력을 거슬러 하늘로 솟아오르는 거대한 우주선처럼 말입니다. 과연 이들은 어떻게 경제의 중력에서 벗어날 수 있었을까요?
그 첫 번째 비밀은 그들의 ‘철옹성 같은 대차대조표’에 있습니다. 알파벳이나 마이크로소프트 같은 기업들은 국가 경제와 맞먹는 막대한 현금을 쌓아두고 있습니다. 부채 비율 역시 사실상 ‘무차입 경영’에 가깝죠. 금리가 오른다는 것은 빚이 많은 기업에게는 이자 폭탄을 의미하지만, 이들에게는 오히려 쌓아둔 현금에서 나오는 이자 수익이 늘어나는 기회가 됩니다. 금리 인상이라는 위기가, 이들에게는 비용이 아닌 수익이 되는 역설이 발생하는 겁니다.
두 번째 비밀은 그들의 비즈니스 모델에 있습니다. 바로 ‘디지털 시대의 연금’이라고 불릴 만한 구독 경제 모델이죠. 마이크로소프트의 클라우드 서비스나 애플의 앱스토어처럼, 이들의 서비스는 이제 우리와 기업들의 일상에 없어서는 안 될 필수재가 되었습니다. 경기가 나빠진다고 해서 하루아침에 이메일을 끊고 클라우드 서버를 끌 수는 없지 않겠습니까? 마치 매달 꼬박꼬박 들어오는 연금처럼, 이 안정적인 현금 흐름은 경기 변동이라는 파도를 막아주는 가장 튼튼한 방파제가 되어줍니다. 마이크로소프트 전체 매출의 80% 이상이 바로 이 안정적인 구독료에서 나온다고 하죠.
마지막으로, 이들은 인플레이션을 두려워하지 않는 강력한 ‘가격 결정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AI 반도체 시장의 80%를 장악한 엔비디아나, 새로운 아이폰 가격을 은근슬쩍 올리는 애플의 사례에서 볼 수 있듯, 이들은 비용 상승 압력을 소비자에게 쉽게 전가할 수 있는 독점적 지위를 누리고 있습니다.
자, 이제 이 모든 조각을 맞춰보면 오늘날 시장의 가장 큰 딜레마가 드러납니다. 연준이 금리를 내리는 이유는, 금리의 중력을 버티지 못하는 평범한 기업들과 실물 경제를 구하기 위함입니다. 하지만 그 조치는 의도치 않게, 이미 중력의 법칙에서 벗어나 ‘탈출 속도’에 도달한 빅테크라는 거대한 우주선에 더 강력한 연료를 주입하는 결과를 낳을 수 있습니다. 약한 고리를 살리기 위한 정책이, 이미 강한 자들의 독주를 더욱 가속화시키는 양극화의 역설이죠.
정리해 보죠. 막대한 현금, 연금 같은 비즈니스 모델, 그리고 독점적 가격 결정력. 이 세 가지 강력한 엔진을 바탕으로 빅테크는 금리라는 전통적인 경제의 중력에서 벗어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앞으로 연준이 실물 경제를 위해 금리 인하라는 선물을 뿌릴 때, 그 단비는 과연 마른땅을 적시게 될까요, 아니면 이미 모든 것을 빨아들이고 있는 거대한 강으로 모두 흘러 들어가게 될까요? 겪어보지 못한 시장인 만큼, 다양한 가능성을 고민해봐야 할 때인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