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일 발표된 생산자 물가지수(PPI)가 예상보다 낮게 나오면서, 시장은 잠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죠. 지난달 워낙 큰 폭으로 올랐던 터라 긴장하고 있었는데, 드디어 지긋지긋한 인플레이션이 잡히는 걸까 하는 기대감이었습니다. 하지만 그 안도감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습니다. 어쩌면 기업들의 이 침묵이, 사실은 물밑에서 벌어지고 있는 거대한 압력을 견뎌내는 비명이자, 더 큰 위험의 전조일 수 있다는 것을 시장이 뒤늦게 깨닫기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지금 미국 경제를 거대한 ‘댐’에 비유해 본다면, 이 복잡한 상황이 한눈에 들어옵니다. 댐의 상류에서는 관세와 여전히 높은 임금 상승률이라는 엄청난 양의 물(비용 압력)이 계속해서 밀려오고 있습니다. 데이터를 살펴보면, 한동안 안정세를 보이던 수입 물가마저 지난 7월 +0.4%로 상승 전환했고, 8월의 시간당 평균 임금 상승률 역시 +3.7%로 팬데믹 이전 수준을 크게 웃돌고 있죠. 댐의 수위는 분명히 계속 높아지고 있는 겁니다.
그런데 왜 물가가 오르지 않는 것일까요? 바로 댐(기업)이 이 모든 압력을 위태롭게 막아서고 있기 때문입니다. 댐 하류의 마을(소비자)이 이 물을 더 이상 감당할 여력이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죠. 웰스파고의 CEO 찰리 샤프는 최근 저소득층 소비자들이 "벼랑 끝에 서 있다(living on the edge)"고 진단했습니다. 그의 진단은 데이터로도 증명됩니다. 미국의 개인 저축률은 4.4%로 팬데믹 이전(약 7%) 보다 훨씬 낮아졌고, 그 빈자리는 1조 3천억 달러를 돌파하며 사상 최고치를 경신한 신용카드 빚이 채우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기업이 섣불리 가격을 올렸다가는 소비가 그대로 얼어붙을 수 있다는 공포가 존재하는 겁니다.
하지만 댐이 물을 막고 있다고 해서 안심할 수 있는 걸까요?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낮은 물가 지표는, 댐의 콘크리트, 즉 기업의 이익 마진에 서서히 균열이 가고 있다는 비명과도 같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금융 데이터 분석 기관 팩트셋에 따르면, S&P 500 기업들의 순이익 마진은 2025년 1분기 12.7%로 정점을 찍은 후, 2분기에는 12.3%로 하락 전환했습니다. 고통은 사라진 것이 아니라, 단지 소비자에게서 기업으로 잠시 ‘이전’되었을 뿐인 거죠.
자, 이제 연준이 처한 진짜 딜레마가 드러납니다. 연준이 고려하는 금리 인하는 댐 하류 마을(소비자)에 활력을 불어넣기 위한 조치입니다. 하지만 이 조치는 의도치 않게 댐 자체를 붕괴시킬 수 있는 위험한 도박이 될 수 있습니다. 모건스탠리의 분석가 리사 샬렛은 "생산자 물가가 소비자 물가보다 빠르게 상승하고 있다는 사실은, 기업들이 비용을 흡수하고 마진 타격을 감수하고 있다는 신호"라고 정확히 짚어냈습니다.
만약 금리 인하로 소비자들의 지갑이 조금 열린다면 어떻게 될까요? 그동안 댐이 억지로 막고 있던 엄청난 양의 물(기업들이 흡수해 온 비용)이 그 틈을 통해 한꺼번에 터져 나오며 ‘지연된 인플레이션’이라는 거대한 홍수를 유발할 수 있습니다. 반대로, 금리 인하가 소비를 살리는 데 실패한다면요? 기업들은 계속해서 마진 악화라는 고통을 겪다가 결국 투자를 줄이고 해고에 나서며 경기 침체라는 또 다른 재앙을 맞을 수도 있습니다.
기업들의 침묵, 즉 가격 인상의 자제는 물가 안정이라는 긍정적 지표 이면에 수익성 악화라는 어두운 현실을 감추고 있습니다. 결국 고통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소비자 혹은 기업 둘 중 한 곳으로 이전될 뿐이죠. 따라서 이제 우리는 물가 지표를 볼 때, 인플레이션과 디플레이션이라는 단순한 이분법을 넘어, 그 고통의 무게를 현재 누가 짊어지고 있는지를 읽어야 하는 더 복잡한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댐의 수위뿐만 아니라, 댐의 균열을 함께 살펴야 할 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