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는 왜 제2의 그리스가 될 수 없는가

by 구미잉

최근 프랑스의 10년물 국채 금리가 과거 위기의 진원지였던 그리스보다 높아졌다는 충격적인 소식이 들려옵니다. 투자자들 사이에서는 2010년 유럽을 휩쓸었던 재정위기의 유령이 되살아나는 것 아니냐는 공포가 번지고 있죠. 하지만 결론부터 말하자면, 지금의 프랑스는 제2의 그리스가 될 수 없습니다. 유럽은 10여 년 전의 처절한 경험을 통해 얻은 강력한 '비밀 병기'를 손에 쥐고 있기 때문입니다.


2010년의 위기는 걷잡을 수 없이 번졌던 '산불'과 같았습니다. 그리스라는 작은 집에서 시작된 불씨는 포르투갈, 스페인, 이탈리아 등 마른 장작 같았던 옆집들로 순식간에 옮겨 붙었죠. 국채 금리는 '7%의 공포'를 넘어 그리스의 경우 33%까지 치솟았고, 무엇보다 이 불을 초기에 진압할 강력한 '금융 소방 시스템'이 부재했습니다.


하지만 지금 프랑스의 상황은 '통제되고 있는 집 한 채의 화재'에 가깝습니다. 불길의 온도(국채 금리 3.5%대)도 당시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낮고, 무엇보다 불이 옆집(이탈리아, 스페인)으로 번지지 않고 오히려 그 집들은 더 튼튼해지고 있죠. 무엇이 이 차이를 만들었을까요?


바로 2012년 위기 속에서 탄생해 2022년에 완성된 유럽중앙은행(ECB)의 비밀 병기, TPI(전달경로 보호 메커니즘)의 존재 때문입니다. TPI는 유로존의 '최첨단 금융 소방 시스템'과 같습니다. 특정 국가에 펀더멘털과 무관한 투기적 공격으로 불길이 치솟으면, ECB라는 소방서가 즉시 출동해 '무제한'으로 물(유동성)을 퍼부어 불길을 잡고 다른 집으로 번지는 것을 원천 차단하는 장치죠. "무엇이든 하겠다"는 과거의 약속을 제도화한 것입니다.


물론 이 소방 시스템은 공짜가 아닙니다. 지원을 받으려면 EU의 재정 규율을 준수하는 등 네 가지 엄격한 '화재 안전 수칙'을 지켜야 한다는 조건이 붙어있죠. 흥미롭게도 현재 프랑스는 재정적자 문제로 이 수칙을 완벽히 지키지 못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프랑스는 유로존 GDP의 20%를 차지하는, 불이 나면 온 동네가 위험해지는 '실패하기에는 너무 큰 집'입니다. ECB가 마냥 지켜볼 수만은 없는 이유죠.


따라서 진짜 관전 포인트는 '프랑스가 망할 것인가?'가 아닙니다. 그보다는 '화재 진압의 대가로, 프랑스는 소방서(ECB)에게 얼마만큼의 재정 주권을 내어놓아야 하는가?'라는 새로운 정치적 힘겨루기가 될 것입니다. 유로존은 이제 위기를 막을 강력한 방패를 얻었지만, 그 방패를 사용하는 비용을 두고 새로운 갈등이 시작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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