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은 APEC 정상회담에서 미-중 갈등이 봉합되기를 기대하며 안도 랠리를 펼치고 있습니다. 그 믿음의 근거에는 '결국 트럼프는 시장의 고통 앞에서 물러설 것(TACO)'이라는 과거의 학습 효과가 자리 잡고 있죠. 하지만 혹시, 시장의 바로 그 '안도감'이 트럼프에게 더 강경하게 나설 수 있는 '청신호'를 보내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우리는 지난봄, 'TACO(Trump Always Chickens Out)'의 마법을 똑똑히 목격했습니다. '해방의 날' 관세 위협에 시장이 10% 넘게 폭락하자, 행정부는 부랴부랴 정책을 유예하며 시장을 달랬죠. 시장은 즉각 9.5% 폭등으로 화답하며 '시장의 힘'을 보여주었습니다.
하지만 가을의 풍경은 사뭇 다릅니다. 미국 경제는 2분기에 3.8%라는 놀라운 성장률을 기록했고, 3분기에도 3.9% 성장이 예측될 만큼 강력한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주식 시장 역시 사상 최고치 부근에서 견고한 흐름을 이어가고 있죠. 마치 튼튼한 갑옷을 입은 장수처럼, 미국 경제는 웬만한 외부 충격은 거뜬히 막아낼 수 있다는 자신감을 뿜어내고 있습니다.
바로 이 '자신감'이 트럼프 행정부의 태도를 바꾸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S&P 글로벌은 "미국 주식 시장이 계속 랠리를 펼치며 추가적인 위협을 더욱 대담하게 만들고 있다"라고 분석합니다. 경제라는 든든한 '완충재'가 있으니, 이제는 시장의 단기적인 비명에 일희일비하지 않고 자신들의 정책 의제를 밀어붙일 수 있다는 계산이죠.
실제로 최근 행정부의 행보는 거침이 없습니다. 러시아의 핵심 에너지 기업에 대한 대규모 제재를 발표하고, G7과 공조하여 중국에 대한 소프트웨어 수출 통제까지 위협하고 나섰습니다. 4주째 이어지는 정부 셧다운 사태에서도 타협의 기미는 보이지 않죠. 시장은 이러한 지정학적 악재들을 놀라울 정도로 차분하게 소화하고 있습니다. VIX '공포지수'는 오히려 하락하며 시장의 '위험 둔감증'을 보여줄 정도입니다.
결국 시장은 스스로가 만든 함정에 빠지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TACO'를 기대하며 시장이 안정적인 모습을 보일수록, 트럼프는 'TACO'를 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고 더욱 강경하게 나갈 수 있습니다. 이 위험한 되먹임 구조 속에서, 시장은 스스로 '매'를 벌고 있는 셈입니다.
물론 이 아슬아슬한 균형이 영원할 수는 없을 겁니다. 언젠가 행정부의 정책이 임계점을 넘어 시장의 인내심을 폭발시키는 순간, '주식 시장 자경단'이 등장해 행정부를 심판할 수도 있겠죠. 하지만 그 임계점이 어디인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지금 시장은 마치 뜨거워지는 냄비 속의 개구리처럼, 다가올 위험을 애써 외면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