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 사귀기를 곁들인.. 영국에서 살아남기 #4
영국에 오기 전에 영어 공부하고 오라고들 하지만, 알지 않는가. 사람은 보통 닥치기 전까진 열과 성을 다해하지 않는다.
언어를 배우는 건 학문과 다르다. 우리는 언어학을 배우고자 함이 아니라 언어를 "습득"하는 것이 목적이므로.
"교과서 위주로 공부했어요"와 같이 뻔한 정공법이 있다. 바로 인풋과 아웃풋 늘리기.
우선 영어를 어느 정도 한다(기본적인 회화는 가능하다)는 가정 하에 설명한다. 인풋의 난이도는 개인에 따라 조정하면 된다.
한국에서부터 하면 좋다. 자연스럽게 영어를 받아들이는 시작점으로 아주 좋다. 나는 한국에서부터 영어로 사용하고 있었는데, 언어 설정 바꾸면 좋은 점은:
자연스럽게 영어를 받아들이게 된다 (뇌를 영어식 사고로 바꾸는데 효과적이다).
실제 사용하는 영어 표현을 알기 좋다.
대부분이 알고 있을 테니 왜 영상을 봐야 하는 지보다, 어떤 영상을 봐야 하는지에 대해 말하고자 한다.
첫째도 흥미, 둘째도 흥미, 셋째도 흥미.
어린이용 애니메이션이 회화에 도움 된다고 해서, 뉴스 영상이나 길거리 인터뷰 영상이 도움 된다고 해서 백날 봐봤자 억지로 보면 효과가 크지 않다. 지속적으로 인풋을 넣어줘야 하는데, 재미없으면 뇌가 거부한다. 게다가 흘려듣기까지 한다면 더 효과가 없다. 24시간 영상 틀어봤자 내가 흘려듣는다면 그건 그냥 소음이다.
내가 좋아하는 콘텐츠를 보자. 그게 예능이어도 좋고, vlog여도 좋고, 애니메이션이어도 좋다. 내가 지금 필요한 게 비즈니스 영어라고 해서 비즈니스 표현이 많이 나오는 영상을 봐봤자, 진짜 필요해서 필사적으로 하면 모르겠지만, 그 정도가 아니라면 금방 관두게 된다.
나의 경우 해외 유튜버는 자주 안 보게 되어서, 간간히 뜨는 해외 인터뷰 영상, 해외 드라마 짤을 보거나 영어 표현 알려주는 유튜브를 제외하고는 그냥 한국 유튜브 채널을 주로 본다. 대신 넷플릭스 콘텐츠를 본다. 내가 주로 보는 콘텐츠는:
Love is blind: 서로 외모를 모른 채 맞선을 보는 연애 예능이다. 커플이 성사되면 서로 얼굴을 확인할 수 있으며, 실제로 결혼을 해야 한다 (...). UK 버전을 보고 있는데, 아무래도 일반인들이 나와 소개팅하는 콘텐츠이다 보니, 다양한 악센트와 실생활에서 쓰는 표현이 많이 나와서 영어 공부용으로 딱이다.
Emily in Paris: 엄청 유명한 넷플릭스 제작 드라마. 한국어 제목은 에밀리, 파리에 가다. 뉴욕에 살던 Emily가 갑작스럽게 프랑스 파리로 파견 가며 벌어지는 일을 다룬다. 프랑스어를 거의 할 줄 모르고, 뉴욕인 그 자체인 Emily가 프랑스에 적응하는 과정을 볼 수 있다. 프랑스 비하 논란이 있고 유치하긴 하지만, 뇌 빼고 보기 좋다.
Harry Potter: 너무나도 고전 그 자체지만 한국어 자막 없이 본 적 없어서 보고 있다. 해리포터를 좋아하기도 하고, 이미 컨텍스트를 알고 있기 때문에 실제 난이도에 비해 이해하기 쉽다 (세계관을 안다는 가정 하). 다만 배우들의 어투가 현대적이지 않은 경우가 많아서 shadowing을 한다면 좀 웃길 수도...
절대 한국어 자막을 켜지 말자. 한국어 자막을 켜면 무의식 중에 한국어 자막을 읽게 된다. 제일 추천하는 방법은 시리즈 물이라는 가정 하에 1화는 영어 자막을 켜고, 2화는 영어 자막을 끄고, 이런 식으로 번갈아가며 보는 방법을 추천한다. 1화에서 컨텍스트 이해를 할 수 있고, 컨텍스트가 어느 정도 이해됐다면 다음 화에서 자막을 끄고 보기 더 수월해진다. 자막을 끄는 것을 추천하는 건 쟤네들이 대체 뭐라는 걸까..라는 상황을 직면해야 하기 때문.
책 읽기를 추천하는 건 단 하나. 영상의 경우 컨텍스트가 이해가 되면 내가 알아들었다고 착각하는 경우가 많다. 그 착각을 부수기 위해 책 읽기도 필요하다. 소설의 경우 구어체가 아닌 경우가 많아, 에세이로 시작하는 것을 추천한다.
재밌어서, 혹은 정말 안 하면 안 되는 상황이라면 방법 1, 2로도 충분하지만, 만약 꾸준히 인풋을 늘리기 힘들다면, 약간의 강제성을 부여해줘야 한다. 더 좋은 건 아웃풋도 늘려준다는 점. 나의 경우 Britcent를 주로 활용하는데, 이유는:
전문성이 입증된 영국인 튜터가 피드백을 준다.
챌린지에 참여한 다른 사람의 답변과 피드백을 들을 수 있다.
콘텐츠가 다양하다.
영국식 영어를 알려준다.
당연히 ChatGPT와 영어로 대화하기라든지, 영어 일기 쓰기 모두 추천하지만, 영어 소통 능력을 키우기 좋은 방법을 적었다.
백 날 인풋 늘려봤자, 아웃풋 안 늘리면 소용이 없다(...). 아웃풋 늘리기는 간단하다. 강제로 영어 환경에 나를 노출시키는 것. 영어를 하지 않으면 내게 불이익이 오거나, 내가 원하는 걸 못 얻는 상황을 자꾸 만들어야 한다. 내가 말을 못 하면 밥을 못 먹는다던가, 내가 원하는 물건을 살 수 없다거나, 내가 원하는 서비스를 못 받는다던가, 나를 어필하지 못해 집 혹은 잡을 구하지 못한다거나. 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본인을 노출시켜야 한다. 짤막한 상황(e.g., 카페에서 커피 주문하면서 스몰톡하기)도 좋지만 보다 지속적이고 긴 시간에 처하면 좋다.
어떻게 지속적이고 강제적인 상황을 만들 수 있을까? 그렇다. 친구를 사귀면 된다 ^ㅇ^
직장을 다니는 방법은 제외하였다.
약간의 운이 필요한데, 친해지기 엄청나게 쉽고 자연스러운 방법이다. 물론 다른 사람과 같이 사는 게 너무 불편하면 studio에서 살아야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웬만하면 flatmates와 같이 사는 집을 구하는 것을 추천한다.
운이 필요한 건 정말 인류애 떨어지는 flatmates를 만나거나, 애초에 서로 있는 듯 없는 듯 지내는 flat일 경우에는 좀 많이 힘들기 때문.
meetup 플랫폼을 이용하자. 친목 목적 모임부터 커리어 관련 네트워킹 모임까지 다양하게 있다. 이건 정말 보장된 방법인데 영국에 온 지 5년 된 내 flatmate도 처음 영국에 왔을 때 일주일에 5번 이상 meetup을 참여했다고 했다. 내향적이라 힘들어도 시도해 보자. 가만히 있으면 아무도 먼저 손 내밀어주지 않는다.
나는 개인적으로 공통 관심사가 적은 단순 친목 모임보단, 공통 관심사가 있는 모임을 추천한다. 공통 관심사가 없으면 겉핥기식 인사만 하다 끝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특히 모임에 참여하는 인원이 많은 경우, 모임 내내 '안녕, 난 누구고, 어디서 왔고, 어디서 살고, 무슨 일을 하고 있어'만 주구 장창하다 끝날 수도 있다. 더군다나 친목 모임의 경우 대체로 원어민보단 외국인이 더 많다. 그리고 영국에 온 지 얼마 안 된 친구들 비율이 더 높다. 내가 충격을 받았던 건, 친목 모임 몇 번 나가다 개발자 모임에 나갔을 때, 생각보다 말이 빨라 알아듣기 어려웠던 점이다. 물론 뉴요커만큼 빠르진 않지만, 문제는 영국의 경우 악센트가 엄청 다양하다는 점이다. 그리고 나는 미국식 영어에 익숙해서 더 심했다. 어느 정도냐면, 미국인 (혹은 미국식 발음)이 말하는 걸 들을 때보다 영국인이 말하는 걸 들을 때 훨씬 많은 에너지를 소모했다. 머리가 아플 정도로. 우리에게 익숙한 영국식 발음을 상상하면 안 된다.
Hellotalk은 그다지 추천하진 않는다. 겉핥기식 인사만 하다 끝나는 경우가 대다수였다. Bumble은 데이팅뿐 아니라 BFF 모드가 있는데, 동성 친구를 만날 수 있다. 의외로 이거로 친구를 사귀는 경우를 많이 봤다.
동네에 있는 도서관을 보면, 책 읽기 모임이나 보드게임 모임 등을 여는 것을 볼 수 있다. 동네 친구 만들기 딱이다. 그리고 도서관을 이용하는 친구라면 왠지 모르게 이상한 사람은 아닐 거라는 생각이 든다.
여러 방법을 적었지만, 핵심은 두 가지다.
1. 영어식 사고를 하는 것. 절대 머릿속으로 통역하지 말 것.
2. 영어를 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스스로를 집어넣을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