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을수 있을 때 많이 묵어라 캐라
예배를 보고 오는 길에 마트에 들러서 고기를 샀다. 집에 가서 미리 사다놓은 상추를 씻어서 오랜만에 상추쌈을 싸먹어야지 하고 기대를 하고 냉장고를 열어보니 상추가 보이지 않았다.
남편에게 상추 사다놓은 것 못 봤냐고 물어보았더니 비빔국수에 넣어 먹었다고 했다. ‘아니 무슨 소도 아니고 그 많은 상추를 혼자서 다 먹냐?’
일주일에 두 번 이상을 마트에 가는데 갈 때마다 상추를 산다. 그것도 한 봉지가 아니라 기본으로 두 봉지를 사고 그날 상추가 유난히 싱싱하거나 먹음직스러워 보일 때는 3봉지를 사기도 한다. 그런데도 정작 내가 먹으려고 찾으면 오늘처럼 흔적도 없이 사라져 있는 경우가 종종 있는 것이다.
어릴 때 시골에서는 집집마다 소를 키웠고 우리 집에도 늘 소가 있었다. 아버지는 새벽같이 일어나서 지게를 지고 소꼴을 베러 가셨다. 장에 가셔서 몸을 겨우 가눌 정도로 술을 마시고 난 다음 날도 같은 시각에 어김없이 지게를 지고 사립문을 나섰다.
날이 새지도 않은 어스름에 나간 아버지는 이슬 가득 묻은 소꼴을 한 짐 해서는 식전에 들어오셨다. 아버지는 바지기에 산처럼 쌓여있는 소꼴을 소 앞에 내려 주셨다. 아버지가 바지기에서 내린 꼴은 양이 어마어마했다. 소는 자기 앞에 놓인 풀을 와그작와그작 경쾌하고 즐거운 소리를 내며 야무지게 먹어 대었다. 세상 부러울 것 없다는 듯이 행복한 모습이었다.
산더미처럼 먹어대는 소의 저녁식사를 위해 아버지는 낮에 농사일을 끝낸 후 오후 해질녘에 한바지기를 더 해 와야 했다. 소를 먹이기 위해 소처럼 부지런히 아침저녁으로 소꼴을 베어 오셨다.
많이 먹는 사람을 흔히 소처럼 먹는다고 하는데 소가 먹는 것을 보면 얼마나 좋은 비유인지 실감할 수 있다. 그리고 우리 집 두 남자가 상추를 먹어대는 것을 보면 어마무시한 양의 꼴을 먹어 대던 소가 자연스럽게 생각이 나는 것이다.
전화로 언니와 소꼴 베던 이야기를 했다.
-촌에 살 때 소꼴 베던 생각 함 해봐라
아버지하고 오빠가 많이 했지만 급할 때는 나도 베다 날랐다.
소같이 많이 먹는 짐승이 또 있을까?
-응, 있다. 우리 집에.
-맞나? 흐흐흐. 아버지가 소가 많이 묵는다고 구박하는 거 봤나?
그러니까 뭐든지 묵을 수 있을 때 많이 묵어라캐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