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에 두 번 교사 엠티는 대부분의 시간이 나눔으로 채워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콘도에 도착하여 약간의 저녁 프로그램이 끝나면 선생님들은 그 때부터 학년 별로 따로 모여서 나눔을 한다. 마치 나눔을 위해서 수련회를 온 것처럼 지치지도 않고 이어가다 보면 보통 새벽 3시~4시가 되어야 잠자리에 든다. 내일을 위해서 잠깐이라도 자 두어야 하기에 아쉬운 마음으로 억지로 잠깐 눈을 붙이는 것이다.
목사님과 부장선생님도 그 사실을 알기에(사실 자기들은 더 안 잠)다음날 프로그램 시작 시간을 일찌감치 10시로 조정해 두셨다
-선생님들 일어나세요.
-벌써요?
-집에 가서 주무시고 퍼뜩 일어나세요. 산책 갑시다.
-선생님은 어제 일찍 잤잖아요. 우리는 4시에 잤어요.
-(못 들은 척 함) 아, 어서 일어나세요!
내 성화에 못 이겨 일어난 선생님 세 분과 함께 산책로를 따라 저 멀리 울산바위를 바라보며 산을 올라갔다.
효샘 : 요즘에 직원들이 부장님 자리로 모여요. 막 자기들끼리 친한 거 있죠?
나샘 : 부장보다는 차장이 더 편하지 않아요?
효샘 : 원래는 저랑 어울리던 사람들인데 부장이 자식을 서울대 보냈잖아요. 그러니까 거기 붙는 거예요. 외로워요, 속상해요, 우리 아들들이 공부를 못하는 게 진짜 고난이에요. 어떻게 보내는 거예요? 서울대?
나샘 : 딸은 노력판데 아들은 머리가 좋았어요. 머리가 좋은데 공부를 안 하는 거예요. 왜 공부를 안 하는지 이해가 안되더라구요. 속이 터졌어요. 당시에는 남편 때문에 스트레스가 장난 아니었을 때여서 마음에 여유가 하나도 없었어요. 공부 못하는 아들을 보면 화부터 치밀었어요. 아들이 왜 그러는 지에는 관심이 없었어요. 아들을 볼 때마다 엄청 다그쳤어요. 미친X처럼요.
맹샘 : 저는 아이들이(아들,딸 쌍둥이)4학년 때 텍사스를 갔어요. 마더와이즈교실(어머니교실)에서 초등학교 4~5학년 때 가면 좋다고 해서 별 생각 없이 가게 되었어요.
나샘 : 어머 지극히 대치동스러운데요?
효샘 : 맹모맘이시네요.
맹샘 : 아이참, 우연히 가게 된 거예요. 미국에 가서도 진짜 이게 맞나 하는 갈등으로 무지 힘들었어요. 다행히 아들은 현지에 적응을 잘해서 친구들과 매일 신나게 놀았어요.
딸은 학교생활을 은근 힘들어했어요. 그래서 책만 읽더라구요. 책을 진짜 많이 읽었어요. 어휘력이 장난 아니었지요. 남편이 살면서 영어 때문에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나 봐요. 아이들은 자기처럼 영어 때문에 고생 안했으면 좋겠다고 하더라구요. 저희는 아이들에게 큰 욕심이 없었어요.
나샘, 효샘 : 음...
효샘 : 맞아요, 기본적으로 욕심이 없어야 되는 것 같아요. 그런데 욕심이 어떻게 없을 수 있어요?
나샘 : 욕심을 떠나서...맹샘이 남편에게 워낙 잘 하잖아요. 부부사이가 좋고 집안이 화목하니까 아이들이 공부를 잘 할 수밖에 없는 것 같아요. 한마디로 가정에 질서가 잘 세워져 있어서 아이들이 잘 될 수밖에 없어요. 합당한 결과라고 봐요. 맹샘 삶의 결론이죠 뭐. 저런 집은 잘 되도 시기질투가 안나요.
효샘 : 종샘 집은 아이비리그가 아니면 상대를 안 하죠?
종샘 : 다 필요 없어요. 우리 남편 집나갔잖아요. 우리 시누는 아이들 데꼬 정신과 다니는 게 일이에요.
나샘 : 맞아요, 아이비리그니 스카이니 하는 게 다 훈장에 불과한 게 아닌가 싶어요. 훈장이 일상생활을 해결해 주지는 않잖아요. 훈장을 얻었을 때는 날개를 단 기분이겠지만 날개가 될지 족쇄가 될지, 길고 짧은 것은 대봐야 알죠.
효샘 : 그 말 들으니까 완전 위로돼요.
맹샘 : 평범한 게 제일 좋은 것 같아요. 평범이 어렵지만요.
종샘 : 인생 별거 없더라니까요.
나샘 : 그니까 서울대가 문제가 아니죠. 효샘 아들이 공부보다는 자기 하고 싶은 것 하겠다고 의사표현을 분명히 하는 건 건강해서 그런 것 같아요. 좋은 거죠. 우리 아들은 내성적이라 그런 말을 못했어요. 내가 하는 온갖 잔소리와 구박을 듣고도 가만히 있었어요. 효샘 아이들처럼 “난 공부 못해, 공부 그 딴 것 안 해.” 라고 소리를 질러야 되는데...소리를 지를 만하지 않다는 것도 나중에 알았어요. 기질적으로도 약하게 태어난데다가 엄마가 넘사벽이잖아요. 결국 폭망했죠 뭐.
남편이 이러구저러구 해서 아들이 어쩌구저쩌구 하면서 남편 탓을 했지만 실상은 제가 아들을 망친 거죠. 몇 년 동안 아들이 낮에는 자고 밤에는 게임만 했어요. 알바를 해도 금방 그만두더라구요. 저는 걍 평생 저렇게 산다고 해도 할 수 없다고 생각했어요. 제가 가진 게 콩 한쪽이라면 그것 나눠먹고 살면 되지, 라고 생각했어요.
효샘 : 아니, 어떻게 그런 생각을 할 수가 있어요?
나샘 : 그동안 얼마나 힘든 일이 많았으면 그렇게 낮은 마음이 되었겠어요?
그니까 서울대가 문제가 아니죠. 아들이 하는 말을 잘 듣고, 말하지 않은 내면을 살피면서 인정해주고 지지해 줘야죠. 아들의 마음을 편하게 해주면 좋을 것 같아요.
효샘 : 아들은 요즘 어쩌구 있어요?
나샘 : 어느 날 갑자기 자기가 이렇게 살면 안 되겠다고 하면서 인터넷 쇼핑몰을 하겠다고 하더라구요. 깜놀했어요. 생각지도 못했거든요.
아들이 자기는 인간관계가 안돼서 직장생활이 안 맞다고 하더라구요. 뭘 팔아치우는 것이나, 인터넷으로 하는 건 자신 있다고 하면서 쇼핑몰을 하겠다고 했어요. 사업자금도 알아서 하겠다고 하데요. 국가에서 주는 청년지원금을 받아서 사무실도 얻고 상품도 구입하더니 진짜 사업을 시작했어요. 지금은 만족하고 있고 즐겁게 일하고 있어요.
효샘 : 아이들이 예배드리고 공동체에 잘 붙어 가니까 저렇게 살아나네요.
종샘 : 맞아요. 공동체가 답이에요. 공동체에 껌딱지처럼 붙어 있으면 돼요.
나샘 : 우리 교사모임처럼 좋은 공동체라야 되겠지요?
맹샘 : 그걸 말이라고 해요? 흐흐
우리는 이후로도 한참을 더 나누었고 산이 울리게 울고 웃었다. 등산이 나눔이 되고 나눔이 힐링이 되었다.
산에서 내려오니 식탁위에 아침식사가 준비되어 있었다. 카페를 운영하시는 까샘이 후원한 커피와 케이크에 눈과 입이 딱 벌어졌다. 우리 취향에 딱 들어맞는 환상의 조합이라니!
10시부터 시작된 프로그램에서도 선생님들의 네버엔딩 나눔과 눈물, 웃음과 감동, 감사가 흘러 넘쳤다. 산을 내려가다 뒤돌아보니 온 산도 기뻐서 춤추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