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실에서 식후 필수 운동

by 분홍소금

3층에서 출근 지문을 찍고 수영장 문을 여니 실내 공기가 후덥지근했다. 막대기로 자동문의 꺼짐 버튼을 누르고 출입문을 열림 상태로 고정 시켰다. 회원이 들어오다가

"문 열어두면 주차장 매연 들어 오지 않아요?" 해서

"매연보다 바깥 공기 유입이 훨씬 많아요. 괜찮아요." 했다.

수영장이 지하 1층 주차장과 접해 있으니 그럴 걱정을 할 만도 하다.

자리에 앉으니 미화 여사님이 쪼르르 와서 오늘은 사람들이 수영하러 많이 안 올 거라고 했다. "두고 봐야죠" 했더, 어린이날과 어버이날 행사하러 여기저기 가느라 바빠서 결석을 많이 할 수 밖에 없다고 했다. (흠!)

내일 휴일이라 수영장 운영을 하지 않으니까 이용자가 크게 줄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는데, 실제로 자유수영과 아쿠아로빅의 시간대마다 평소와 다름없는 인원이 왔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무슨 무슨 날에 휘둘리지 않고 정해진 시간에 와서 규칙적으로 수영을 하는 것 같았다.

미화 여사님이 퇴근을 하고 나서 휴식 시간이 되어 식사를 하려고 4층에 있는 야외 테라스로 갔다. 어느새 테라스 건너편 산을 온통 뒤덮고 있는 초록초록한 나무들을 보니 눈이 시원했다. 경쾌한 새소리와 함께 탁 트인 전망 앞에서 느긋하게 식사를 하게 된 것이 얼마만 인가 싶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추워서 나오지 못하고 실내 간이 의자에서 반찬 냄새 걱정을 하며 후딱 먹어 치울 수밖에 없었었다. 아침을 먹는 둥 마는 둥 하고 왔더니 배가 고픈 참에 잡곡밥에 카레를 끼얹어서 열무 김치와 먹었더니 꿀맛이었다. 시장이 반찬이다.

식후 30분 등산은 어느새 루틴으로 자리 잡았는데도 '오늘 쉬어야 하나?' 싶은 날이 있다. 오후부터 비가 온다고 하더니 저기압인가 보다. 밥을 잘 먹고 에너지를 보충했다 싶은데도 어쩔수 없이 몸이 무거웠다. 그렇지만 산에서 받는 좋은 기운과 즐거움이 더 기대되기에 힘을 내어 산길로 들어섰다. 드문드문 운동하는 사람들이 보였고, 몇 사람은 맨발로 걷고 있었다. 지난 겨울에 나도 봄이 되면 꼭 맨발로 걸어봐야지 했는데 아직도 실천하지 못하고 있다. 사무실 들어가서 발 씻고, 닦고 하는 것이 거추장스러울 것 같아서 자꾸 미룬다.

산은 나를 실망시키는 법이 없다. 오늘 따라 황토색 산길이 그렇게 정겨울 수가 없다. 색깔도 모양도 나의 아날로그 감성과 잘 어울린다. 산길이 엄마 품처럼 포근하다. 사려 깊고 인정 많은 할머니처럼 자라나는 뿌리를 품었다가 지나가는 사람들을 미끄럽지 않게 해 준다. 길가에 떨어진 씨앗을 받았다가 어느새 꽃을 피워 사람들을 즐겁게 해준다. 개미가 집을 짓고 두더지가 굴을 파서 터널을 만들어도 개의치 않는다. 엄마 같고 할머니 같이 편안한 산길의 품에서 내 속에 들어와 있던 뾰족한 것들이 스르르 빠져 나간다. 날 선 마음이 내려지고 더러워졌던 마음이 씻어진다.

식후 등산을 마치고 사무실로 돌아와 수영장 이용자들을 기분 좋게 맞이했다. 회원 한 분이 사물함이 열리지 않는다고 부른다.

"잘 되던 게 왜 안돼요?"

"번호가 살짝 돌아가서 그래요, 열어드릴게요. 회원님 비번 다시 맞췄어요."

회원은 성가시게 해서 미안하다고 한다.

"괜찮아요 안 열리면 언제든지 불러주세요."

주차장에서 '끼이이익' 차들이 주차하는 소리를 아무렇지 않게 들으며 오늘 매출을 기입하고 정리했다. 건물 여기저기를 왔다갔다 하며 청소를 하시는 미화 아저씨에게 몇 번이고 같은 인사를 했다. 사람이 어른거리면 인사가 자동으로 튀어나와서 그렇다. 인사봇이 됐나? 그건 아니다. 나는 아날로그 직원이다. 정년 퇴직 하는 그날까지 길처럼 나무처럼 정겹고 친절한 직원으로 남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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