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사카 교토 2박 3일(3)

Is there 니시끼 market 데스까?

by 분홍소금


이튿날 아침 일찍 일어나 호텔에서 조식을 해결했다. 각자가 원하는 반찬을 직접 고른 후 서빙 쟁반에 올려서 자리에 갖고 가면 되었다. 반찬 그릇을 충분히 올리지 않았는데 서빙 쟁반이 꽉 찼다. 사람들을 살짝 보니 뷔페처럼 먹고 또 먹고 그러지를 않았다. 잔뜩 먹고 싶은데 워낙 적은 양(한 젓가락)이 담겨 있어서 쟁반 위를 틈이 없도록 테트리스 하듯 요리조리 맞춰서 최대한 많은 반찬을 세팅했다




흔한 가정 식 반찬으로 야채 절임이 많은 것이 인상적이었다. 야채 절임이 서양의 피클보다는 새콤함 맛이 덜하면서 우리나라의 장아찌보다는 싱겁고 달큰했다.



조식을 든든히 먹어야 일정을 소화하는데 지장이 없을 것 같기도 하고, 반찬이 기름지거나 자극적이지 않고 내 입맛에 잘 맞기도 해서 가져온 음식을 하나도 남기지 않고 다 먹었다.




교토로 가기 위해 한큐 교토선을 탔다. 좌석에 편안하게 앉아서 안내 방송을 들었다.


지하철 안내 방송을 하는 목소리가 무척 부드럽고 나긋나긋 했다. 그런데 영어 안내 방송은 발음이 높낮이가 없이 밋밋했다. 영어가 방송하는 이의 입속에서 납작하게 눌러져서 나오는 느낌이었다.



어딜 가나 사람들을 구경하게 되는 것 같다. 우리나라에서는 버스나 지하철까지 마스크가 해제되었는데, 일본에서는 여전히 모두가 마스크를 쓰고 있었다. 5살 쯤 되어 보이는 아이와 엄마가 건너편 좌석에 앉아 있었다. 아이도 엄마도 마스크를 쓰고 있어 눈만 보였다.



지하철이 달리는 내내 아이는 공중 예절이 몸에 밴 듯 두 손을 가지런히 모으고 얌전히 앉아있었다. 창밖을 바라보고 있더니 기차가 지나가자, 손가락으로 기차를 가리키며 옆에 앉은 자기 엄마에게 정말 작은 목소리로 '신칸센' 했다.



창밖에 구름이 너무 예뻤다. 기차길 너머로 오래된 서민 아파트가 보였는데 복도 담벼락에 이불을 널어 놓은 모습이 푸근하고 친근하게 다가왔다. 시골 고향 집 널찍한 마당을 가로지르는 빨래 줄에 이불을 넌 후 오후 4시 쯤 걷어 들이며, 햇빛 냄새 가득한 보송한 이불에 얼굴을 파묻곤 했던 때가 생각났다. 거기에 비하면 이불을 더 이상 바깥에 내다 널 수 없는 지금의 최신식 우리 집은 얼마나 삭막한가,



오사카에서 교토 역까지 1시간 정도 걸렸다. 그 날은 역 근처의 전통 시장을 구경하고 나서 청수사를 갔다가 다시 교토역으로 와서 숙소가 있는 아라시야마로 갈 예정이었다. 우리는 먼저 캐리어와 배낭을 코인 락커에 보관하기로 했다. 솜의 검색 질이 다시 시작되었다.


-코인락커 ,그까짓 거는 안내 부스(일본 지하철 역에는 안내 부스가 눈에 잘 띄는 장소 곳곳에 있었다)에서 물어보면 되잖아. 일일이 들여다보고 있노?




솜이 찾았다고 해서 따라가 보니 대형 락커는 모두 대여 상태였고 소형 락커 몇 개만 남아 있었다. 할 수 없이 백 팩만 넣고 캐리어가 들어갈 만한 크기의 락커를 다시 찾기 시작했다. 마침 안내 부스가 가까이 있어서 곧장 물어 볼 수 있었다.



안내 부스에서 가르쳐준 곳에 가보니 대형 락커가 많이 남아 있었다. 대형 락커에 캐리어를 넣어 보니 백팩 두 개를 넣을 수 있을 정도로 공간이 충분했다. 짐을 한 곳에 모으기 위해 백 팩을 넣어둔 처음 락커로 돌아 가서 락커를 열었다. 그 순간 락커가 5000원을 꿀꺽 삼켰다. 짐을 한 곳에 모아 놓고 역을 빠져 나오려고 하는데 솜이 고개를 갸웃갸웃하며
-아무래도 백 팩 하나는 갖고 가야 할 것 같아. 우리가 쇼핑을 하게 되면 비닐봉지를 손에 들고 다녀야 된단 말이야, 안돼, 힘들어, 못 들어.


우리는 돌아가지 않을 수 없었다. 배낭을 빼려고 락커 문을 여는 순간 이번엔 대형 락커가 7000원을 꿀꺽했다. 120000원이 순식간에 날아갔다.


-손에 들고 다니느라 고생하는 것 보다 낫겠지 머


-엄마, 이런 걸 멍청 비용이라고 하는 거야



전통시장 (니시끼시장)이 우리나라 시골 5일 장 처럼 일찍 문을 열어서 다행이었다. 역에서 나와


길을 따라 죽 내려가면 된다고 했는데 이면 도로가 여러 곳인 데다 길들이 비슷 비슷해서 어디로 가야할 지 몹시 헷갈렸다. 솜의 검색 질을 보고 있으려니 속에서 참을 수 없는 답답함이 몰려왔다.(천불이 남)그렇다고 수고하는 딸에게 딴지를 걸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두드려라 그러면 열릴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을 것이요...' 아줌마의 무모한 오지랖에 드디어 발동이 걸렸다.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다.



나는 누구든 물어볼 만한 사람이 없는지 열심히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마침 길 옆에 1평 남짓, 조그만 가게에서 젊은 여자가 나왔다. 시장이 있을 것 같은 방향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쓰미마생, Is there 니시끼 market 데스까? 하고 질러버렸다. 젊은 여자는 국적불명의 내 말을 찰떡같이 알아듣고는 활짝 웃으며 "야야" 했다.


대한민국 아줌아의 무대포 막무가내 화법이 빛을 발하는 순간이었다.


-솜아 저기가 맞다 카잖아? 근데 일본 사람 영어 잘하네!


솜이 "뭐꼬?" 했다.



니시끼 시장은 특이하게 생겼다. 가게가 일렬로 길게 양쪽으로 줄지어 있고, 지나 다닐 수 있는 길은 중앙에 나 있는 통로 하나 뿐이었다. 길이 한 갈래 뿐이어서 굉장히 불편했다



이른 시간이라 분명 들어오는 입구에서는 사람들이 많지 않았는데 중간 쯤 가니 어디에서 그 많은 사람들이 쏟아져 나왔는지 통로가 사람들로 꽉 차 있었다. 동네 할아버지, 할머니, 유모차를 끌고 마실 나온 젊은 부부, 관광객, 데이트 족 등, 모두가 하나 밖에 없는 통로로 들어오는 통에 밀리다시피 나아가야 했다.




가게에는 유튜브에서 보았던 신기 방기한 달걀 말이, 해물 구이, 각종 야채 절임, 즉석에서 먹을 수 있는 어묵 들이 쌓여 있었다. 400년 전통 시장에서 가업을 이으며 장인의 솜씨로 만든 음식들이라고 들었는데 그리 대단해 보이지 않았다.(배 부른 자의 사견) 즉석에서 굽거나 삶아서 내놓는 음식이 아무리 봐도 우리나라 길거리 음식 수준으로 밖에 보이지 않았다.(이 또한 지극히 사견임)게다가 하나같이 비쌌다. 배가 불러서 그런지는 모르겠으나 선뜻 손이 가지 않았다.



시장에 온 김에 소박한 면기나 무난한 디자인의 장국용 보울, 나무 젓가락을 샀으면 하는 마음에 몇 군데 둘러 보았지만 디자인이 요란하고 지극히 일본스러웠다. 실용적이기 보다 장식 용에 가까워 그릇 장이나 장식 장 안에 보관하다 말 것 같았다. 게다가 가격도 비 현실적으로 비쌌다.



시장에서 벗어나 청수사로 가는 도로 양 옆의 가게들에서 신발도 팔고 옷도 팔고 음식도 팔았다.


'카모메 식당'에서 사치에 씨가 입은 블라우스를 떠올리며 혹시나 하는 마음에 신경을 곤두세워 보았으나 그런 옷은 찾을 수가 없었다. 언니가 말한 비싸지 않은 편한 신발도 기웃 거려 보았으나 좀처럼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뜻밖에 만난 천 가게는 반가웠다. 자투리 천이 바구니에 담겨 있었는데 질 좋은 면에 잔잔한 꽃무늬가 프린트 되어 있었다. 천을 사가면 딱 꼬집어서 생각이 나진 않지만 어딘가 요긴하게 쓸모가 있을듯했다.


- 솜아, 조각 천 좀 봐, 어떤 게 예쁜지 디자인 좀 봐줘라.


천 쪼가리잖아 그런 걸 왜 사?




청수사로 올라갔다. 올라가는 사람들이 많지 않았다. 고풍스럽고 고즈넉하기까지 한 골목길을 걸으니 정신이 맑아졌다. 청수사가 가까워오자 인력 거를 탄 사람들이 보였다. 인력 거 위에서 두 사람이 환하게 웃으며 포즈를 취하자 일행인 듯 보이는 사람이 카메라로 열심히 찍고 있었다.


-솜아 유투버 들 좀 봐.


엄마는 유투버 찍는 사람만 보이나?


-응, 딱 보면 티가 나


-유투버를 하도 많이 봐서 그런가? 그건 그렇고, 엄마 인력 거 탈래?


-그건 별로, 인력 거 보니까 운수 좋은 날 김 첨지 생각 난다야.


-그거랑 다르지, 저 사람들 돈 버는 거야, 우리는 인력 거 타서 좋고 저 사람들은 돈 벌어 좋고


-아무리 돈 버는 일이라도 저 사람들이 내 눈 앞에서 인력 거 끄느라고 고생하는 것 보고 싶지 않다.




청수사에서 내려오는 데 정류장 옆에 마트가 있었다. 현지인들이 장 보러 가는 동네 마트 같았다.


카레가 다양해서 뭘 골라야 할지 몰라 종류 별로 두 개 씩 샀다. 드립 커피와 과자도 이것 저것 담았다. 백 팩을 갖고 오지 않았으면 어쩔 뻔 했노, 했다.


집에 돌아와서 먹어 보니 그 마트에서 산 것이 가장 맛있고 신선했다. 특히 카레와 드립 커피는 그 때 왕창 사오지 않은 것을 두고 두고 후회했다.



둘째 날이 그렇게 가고 있었다. 마무리는 아라시야마에 있는 마지막 숙소인 료칸에서 하게 될 것이다. 어디를 가나 즐거웠다. 뭘 보거나 안 보거나, 사거나 안 사거나 그런 것들은 하나도 중요하지 않았다. 즐거웠다. 뇌가 즐거웠고 마음이 즐거웠고 몸이 가벼웠다. 우리가 일본에 왔기 때문이 아니라 여행을 왔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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