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일 듣기 싫은 말은 무엇입니까?

by 분홍소금


(일러스트 by 솜)



내 아들아, 네 아비의 훈계를 들으며 네 어미의 법을 떠나지 말라(잠언 1:8)



성경에서 잠언 하면 어떤 분은 잠 오는 말인 줄 하는데, 목사님은 잠언은 굉장히 순도가 높은, 그래서 아주 짠 소금 중의 소금 말씀이라고 했습니다.



잠언에는 하라 는 긍정 명령이 140번, 하지 말라는 부정 명령이 90번 정도 나온다고 합니다. 많은 명령 중 제일 첫 번째 명령이 바로 이 ’들으라‘ 입니다. 제일 첫 번째 나왔을 뿐 아니라 제일 많이 나오기도 하지요. 그만큼 듣는 게 중요합니다. 최근에 화두가 된 소통도 따지고 보면 듣는 것에서 출발하니까요. 훈계를 들으라고 하는데 훈계는 잘못을 지적하고 꾸짖고 다시는 잘못하지 말라고 잔소리하고 가르치는 것입니다.



훈계를 듣는 입장에서 보면 아무리 좋은 말이어도 듣기가 싫은 것이 있습니다.



여러분이 가장 듣기 싫어 하는 말은 무엇입니까?


AA : 제가 장애인 활동 도우미를 하면서 제가 ㄱ할머니의 장애인 손녀 돌봄이를 한 사람 소개했는데 할머니가 저를 다시 부르는 바람에 다시 그 집에 가게 되었어요. 그러니까 본의 아니게 제가 소개해준 사람의 일자리를 빼앗은 꼴이 되었어요. 제가 소개해준 분이 저를 나쁜 사람이라고 소문을 냈어요. 제가 손녀를 데리고 학교를 가면 사람들이 수군거릴 것인데 그 일로 우울과 불안이 올라와 몹시 힘들어요.



LL : 집사님은 누가 봐도 바른 생활 아줌마에다 남에게 피해를 주는 일은 안 할 것처럼 보여요. 어째요? 집사님은 나는 남에게 피해를 준 적이 없다, 당한 것 밖에 없는 피해자로 살았는데, 일자리를 뺏은 가해자 라는 소리를 듣게 되었으니 진짜 힘들 것 같아요.


근데 오늘 목사님이 "이 새 대가리야," 하면 "야,너는 닭 대가리잖아," 하지 말고 참새처럼 짹짹 하면 된다 하시던데요?


AA : 학교에 가기가 두려워요.



LL : 참새가 그저 짹짹 하듯이 사람들이 수군거리면 "옳소이다 내가 가해자 맞다." 하시면 어떨까요? 이 사건으로, 우리는 피해자 같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 우리도 언제든 가해자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하시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어요.



BB : 엄마가 "내가 아픈 게 다 니 탓이다." 하는 게 듣기 싫어요.



LL : AA집사님 처럼 집사님도 걍 짹짹 하실 수 있으실까요? 엄마 입장에서는 독일 유학까지 다녀온 딸이 평범하게 사는 게 용납이 안 될 수도 있을 것 같아요.



BB : 저는 지금 현재 생활에 만족한다고 아무리 말해도 엄마가 듣지 않으세요.



LL : 엄마는 바뀌지 않을 거에요. 엄마께 죄송하다고, 엄마의 억울한 마음을 공감해 주실 수 있을까요? 엄마의 속상한 마음을 알고 있고 그 점에 대해서 진심으로 죄송하다고 하면 이외로 엄마 마음이 풀어질 수도 있지 않을까 합니다만. 엄마 마음이 풀리면 그다음에 집사님이 하시고 싶은 말을 꺼내보는 거죠.



CC : 저는 딸이 적당히 하라고 하는 말이 듣기 싫어요.



LL : 딸의 훈계를 들으셨군요. 집사님은 의지의 한국인 이시잖아요. 한번 꽂히면 끝을 보시잖아요. 사회복지사 자격증까지 따시고 오늘날 멋진 모습으로 잘 살고 계시는데~ 참 대단하세요 칭찬 받아 마땅하세요. 그런데 이제는 아무리 옳은 일이라도 물불 가리지 않고 돌진하는 것은 좀 아니라고 봅니다. 딸이 적당히 하라고 하는 건 건강도 그렇고, 엄마가 걱정돼서 하는 말 같아요.

열심히 하는 것도 좋지만 적당히 하는 게 더 좋을 때가 많더라구요. 열심히 하는 사람은 적당히 하는 사람이 이해가 안 될 것 같아요. 적당히 하는 꼴을 못 보는 거죠. 적당히 슬슬 하는 사람은 못 봐줄 사람이 없어요. 제 경우에는 그렇습니다.



LL : 저는 엄마가 저한테 "고생고생해서 공부 시켰더니~"하는 말이 참 듣기가 어려웠어요. 싫다, 보다는 슬펐어요. 집안에서 혜택을 가장 많이 받았는데 제가 제일 가난하게 살았거든요.

엄마한테 나한테 속상하고 배반 당한 마음을 알고 있다고 말씀을 드렸어요. 제가 그 마음을 어찌 모를 수가 있겠어요. 죄송하다고 말씀드렸어요. 자랑스런 딸이 되고 싶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겠어요. 본의 아니게 엄마와 가족들을 배반하는 삶을 살아야 하는 슬픔이 있었습니다. 엄마한테 죄송하다고 했고 그래도 빡센 고난 덕에 구원 받았다고 했지요. 엄마가 돌아가실 때 천국에서 만나자고 말씀드릴 수 있었던 것이 얼마나 감사한지 모르겠습니다. 그래도 엄마 살아 계실 때 엄마 마음 안다고 정말 죄송하다고 더 많이 말하지 못한 것에 대한 회한이 있습니다.



우리는 훈계가 듣기 싫습니다. 고난이 없고 잘 먹고 잘 살수록 더 그렇습니다. 목사님은 잠언 말씀을 전하면서 킬러 문항 같은 아내 때문에 큐티를 하고, 모두가 명확하게 알고 있는데 자기만 몰랐던 자신의 교만한 모습을 보게 되었다고 합니다.


내 인생의 킬러 문항이 있어야 비로소 훈계의 말씀이 귀에 들어 오는 것 같아요.

우리는 어쩔 수 없습니다. 내 인생의 킬러 문항을 만났을 때라도 훈계를 들을 수 있는 것이 감사할 따름입니다. 저와 여러분 한 주 동안 훈계를 잘 듣고 짹짹 잘 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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