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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혜승 Aug 14. 2022

잔인하리만치 무상(無常)한 인간의 드라마

Pick! Artist, 류인 (feat. Kiaf)

#상상을 더한 대담 1


조각가 류인은 1999년 43세의 나이로 요절했다. 활동 기간은 10년 남짓에 불과하지만 그가 남긴 작품의 무게감은 작지 않다. 작가는 내내 인체에 천착했다. 구체적으로는 인간의 존재 현실로 수반되는 고통을 집요하게 더듬었다. 그의 조각은 “20세기 황폐한 인간상”으로 평가받는데, 작가의 초상이라 해도 무방하다. 실제로 그는 극심한 통증을 동반한 관절염을 내내 앓았다. 병약한 육체의 고통뿐만 아니라 심적으로도 평안하지 못했던 그는 흙을 만지는 행위를 통해 스스로를 만지듯 위로했지만 결국 병마에 스러졌다. 생전의 그를 만났다면 이런 대화를 나누지 않았을까.


Q. 작가노트에서 “나는 흙 앞에 진지해야만 했다”고 고백했습니다. 어떤 의미일까요?

: 오늘도 스스로 흙에 젖어들면서 나의 두께를 확인했습니다. 여기서 두께는 나의 실존입니다. 내가 살아온 삶의 두께라고 설명할 수 있겠네요. 현상학자 메를로퐁티가 살(la chair)의 두께를 말했지요. 다시 말하면 몸인데, 내가 흙을 만질 때 내 몸이 세계의 몸인 흙을 만지게 되고, 흙이 또한 나를 만지게 됩니다. 흙을 통해 숨결의 전달이 가능합니다. 그 감정은 정직하고 직접적이죠. 설명하기 어려운 인간의 복잡한 심리 표현이 흙 앞에서는 단순하고 솔직해집니다.

Q. 작품 대부분이 인간 신체를 형상화하고 있습니다. 특히 남성의 몸입니다. 그 강인한 형상은 그저 바라만 보는데도 감정적 통증을 유발합니다. 가느다란 꼬챙이에 꽂혀 허공에 매달린 육체, 형벌을 받듯 묶이고 갇힌 육체를 보며 ‘뭐가 그리 작가를 아프게 했을까’ 생각했습니다.

: 육체의 고통이 운명처럼 나를 따라다녔어요. 관절이 좋지 않았는데, 그 고통을 그대로 드러냈어요. 조각으로 형상화된 불퉁불퉁 불거진 손가락 발가락은 내 몸의 현실이었습니다. 절단된 두 다리만을 제시한 초기작 〈입산I〉(1986)에서도 뼈가 드러나고 고름이 찬 내 발을 그대로 담아 조각했어요. 나의 실존이었던 셈입니다.


Q. 과도한 음주로 작가 스스로 육체를 파괴했다는 주변의 증언도 들립니다.

: 숙명과도 같은 육체의 아픔 말고도 현실을 곱게 볼 줄 모르는 청춘의 질병을 앓았다고 할 수 있겠네요. 감정과잉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걸까요? 나는 예민했고 나를 억압하는 모든 것에 불온했으니까요. 불안, 절망, 상실과 같은 비극적 정서가 나를 지배했습니다. 성공한 화가인 아버지의 이름(류경채)도 내가 벗어나야 할 굴레였을지 모르겠네요.


Q. 작품 활동 기간은 짧았지만 작업은 격정적이었습니다.

: 대학원 1학년 때 작업한 〈파란(破卵)〉(1984)을 시작으로 본격 입문했어요. 대학원을 졸업하면서 개인전도 열고 활동이 활발해졌지요. 아, 아카데미 과정을 마쳤다는 졸업이란 말은 내게 어울리지 않겠네요. 탈출이 낫겠습니다. 나는 뭐든 벗어나고자 했으니까요. 좌대에 놓인 조각이라는 관습에서도 벗어나고 싶었어요. 인체 형상을 공중에 매달았고, 극적인 설치로 연극성을 더했죠. 이중성, 양면성으로 드러나는 인간의 본성을 표현하고자 했어요. 예컨대 날개 없는 인간의 비상 같은. 날개 잃은 이카루스를 닮은 욕망하는 인간은 격정적이지만 비극적이죠. 내 작품 세계를 관통하는 주제를 한마디로 요약하면 인간의 드라마라 할 수 있겠네요.


글/ 강혜승 Ph.D.


작가정보_류인(1956-1999)


1987 홍익대학교 조소과 석사

1981 홍익대학교 조소과 학사


개인전

1987 《류인 조각전》, 윤 갤러리, 서울

1991 《류인 개인전》, 문예진흥원 미술회관, 서울

1994 《류인: The Body-Energetic/Self Reflection》, 한국화랑, 뉴욕

1995 《류인: '95 미술의 해-제1회 한국미술평론가협회 선정 우수창작상 수상기념전》, 아트스페이스 서울, 서울


단체전

1990 《젊은 시각 - 내일에의 제안전》, 예술의 전당, 서울

1995 《스푸마토의 경계 위에서》, 아트스페이스 서울, 서울


수상

1999 제1회 한국일보 청년작가 초대전 우수상

1993 오늘의 젊은 예술가상, 문화체육관광부

1983, 1988, 1990 대한민국미술대전 특선, 우수상


자료조사/ 박주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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