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본다. 그런데 얼마나 볼 수 있을까? 사실 보잘것없는 인간의 시지각은 과학의 발달로 밑천을 드러낸 지 오래다. 그런데 기술 발전으로 그 능력치를 끌어올릴 수 있게 됐다. 예컨대카메라의 발명 같은. 확대하거나 고속 촬영하는 기술을 통해 우리는 그간 보지 못한 바를 들여다볼 수 있게 됐다. 보았으나 지각하지 못한 바를 시각의 무의식 영역이라고 한다. 우리 정신의 심급이 크게 의식과 무의식으로 나뉘고, 의식하지 못한 바를 꿈을 통해 논증하듯, 보았지만 사실은 보지 못한 바를 사진을 통해 확인한다. 작가 안준은 바로 이 지점에서 사진이라는 매체의 존재 이유를 증명한다.
Q. 당신의 작품은 초현실적입니다. 합성사진이라고 오해할 수도 있을 것 같아요.
: 현실이 아닌 듯 보이지만 현실입니다. 눈앞의 현실인데 눈이 잡아내지 못하는 현상을 포착하는 거죠. 인간의 눈이 현상을 쫓는 속도는 그리 빠르지 않아요. 사과를 던졌을 때 우리 눈은 떨어지는 사과를 얼마나 따라잡을 수 있을까요? 보통 떨어진 사실만 남게 되죠. 실제 현상과 우리 눈이 보는 바의 차이는 커요. 제가 포착한 순간은 카메라를 통해 볼 수 있는 현실인 거죠.
Q. 역사상 유명한 사과 셋이 있잖아요. 이브의 사과, 뉴턴의 사과, 세잔의 사과. 당신도 사과를 찍었군요.
: 맞아요. 사과는 재미있어요. 종교적으로, 과학적으로 그리고 예술적으로 은유하는 바가 각기 다르죠. 그런 상징성을 저 역시 참조했어요. 사과를 찍은 제 작품 제목도 〈중력(Gravity)〉(2013-2014)이고요. 폴 세잔은 사과를 그리면서 상투적인 시선을 배제했잖아요. 인간의 눈에 맛있게 보이는 사과가 아니라, 사과라는 존재 자체를 그리려고 했죠. 사과를 대상화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제 작업도 비슷한 맥락이에요. 사과를 통해 현상 자체를 보여주고 싶었어요.
Q. 현상을 포착하는 작업 방식을 설명해 주세요.
: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가 뒤엉킨 듯한 공간, 예를 들면 재건축을 앞둔 오래된 주택을 배경으로 사과를 한 움큼씩 던져요. 그리고 1/8000초까지 셔터 스피드를 올려서 사진 한 장을 위해 많게는 수천 번을 찍어요. 던지면 떨어지는 현상은 필연적인데 사과가 어떻게 떨어질지 또 카메라가 어떤 순간을 포착할지는 모두 우연에 맡기는 거죠. 필연과 우연이 씨실과 날실처럼 엮이는 찰나를 잡는 작업입니다.
Q. 작가 스스로 작업의 모델이 되기도 했습니다. 사과처럼 떨어지진 않았지만 그 경계에서 무척이나 아슬아슬했습니다.
: 초기 〈자화상Self-Portrait〉(2008-2013) 시리즈예요. 어느 날 고층 빌딩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는데 ‘내가 지금 어떤 시공간에 서있는 거지’ 싶었어요. 건물 아래쪽이 아득한 미래처럼 보였죠. 아, 내가 서 있는 현재라는 시간이 과거와 미래 사이 허공과 같겠구나 생각했어요. 그 계기로 높은 곳에 올라 난간에 선 나를 찍기 시작했어요. 생과 사의 경계, 미래와 과거의 경계에 선 나를 발견하고 싶었던 거죠. 안전장비를 착용해도 난간에 오를 때의 공포감은 어마어마한데 카메라에 포착된 순간의 파편 속에서 나조차 몰랐던 나를 발견할 수 있어요.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사이의 간극을 포착한다는 점, 사진이 매력적인 이유죠.
글/ 강혜승 Ph. D.
_작가 정보_안준(1981-)
2017 홍익대학교 대학원 사진학과 박사
2011 파슨스 사진학과 석사 우등졸업
2007 프랫인스티튜트 사진학과 석사
2006 서던캘리포니아대학 미술사학과 학사
개인전
2012 《Invisible; Belt 2012 Competition Winner’s exhibition》, Art Link, 서울
2018 《On the Verge》, Potographic Center Northwest, 시애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