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F'라는 가면을 쓴다.

by 이상한힐러




솔직하게 나의 소신을 이야기하면,

나는 MBTI를 그렇게 신뢰하지 않는다.


그 이유를 설명하자면,

일단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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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생에 첫 MBTI 경험은 대략 13년 전 일이다.


전공과목 중 '심리진단'이라는 수업이 있었는데,

학생상담센터에 가서 MBTI 검사를 하고,

결과 해석 상담까지 받아 관련 보고서를 작성해 오는 것이 과제였다.


당시 여자친구와 함께 검사를 받았던 터라

결과 해석 상담에도 동행했는데,

결과가 아주 매콤했던 탓에 지금까지도 잊히지 않는다.


나는 'ISTJ' / 여자친구는 'ENFP'


딱딱하고 경직된 20대 남성과

자유로운 영혼의 20대 여성.


단 하나의 알파벳도 같지 않은

상극을 견주는 남녀를 사이에 두고

결과 해석을 담당하던 상담사 선생님의 두 눈이

당사자보다 흥미롭게 반짝였다.


양극단의 성향을

단짠의 케미로 통합해 보고자 애쓰던

상담사 선생님의 열성적인 설명 덕

나의 짜릿한 MBTI 첫 경험은

더더욱 평생 잊을 수 없는 강렬한 추억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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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토록 인상적이던 나의 MBTI는 지금 어떻게 되었을까?


몇 년 전부터 자기소개에 자신의 MBTI유형을 밝히는 것이 마치 국룰처럼 자리 잡으면서

그동안 나는 스스로 확신에 찬 'ISTJ'라고 소개하고 다녔다.


하지만 웬걸,

최근 다시 실시한 검사에서 그동안의 확신은 온데간데없이 결과가 바뀌어 버린 것 아닌가.

(그것도 웹사이트가 아닌 공식 검사 결과였다.)


확신의 ISTJIS'FP'로


4가지 항목 중 2가지.

무려 50% 달라져버린 것이다.


사람은 실수를 하지만, 도구는 그렇지 않은 법이기에

아무래도 내가 변심한 탓일 가능성이 컸다.


나중에 살펴보니,

나의 성향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더라도

내가 하는 일의 특성으로

'감정'적 측면과 '심리적 유연성'을 중요하게 생각하게 되었던 후천적 태도가 검사 결과에 반영된 듯했다.


쉽게 말해 나의 기질은 그대로이지만,

후천적으로 추구하게 된 가치관이 반영된 것이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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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문제는 나는 스스로 여전히 '확신의 T'로 여기고 살아가고 있지만,

나에 대해 잘 모르는 이들은 오히려 나를 'T호소인' 쯤으로 생각한다는 사실이다.


아마도 나의 직업적인 부분에 대한 기대감이 반영된 것 같지만,

매번 이 과정을 설명하는 것이 번거롭고 귀찮기도 해서

최근에는 내 스스로를 냥 '가면성 F'라고 소개한다.


딱히 속이고 싶은 의도는 없지만,

마치 착시현상처럼 나의 직업병 같은 것이

어느 정도 'F처럼' 보이는 것뿐이라고 말이다.


그럼에도 상대방이 믿지 않는 경우

그러려니 'F'인 척하고 넘긴다.

상대가 나를 친절하고 다정한 사람으로 여겨준다는데,

굳이 마다할 이유는 없으니.


그래서 나는 매번 'F'라는 가면을 쓴다.


어쩌면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나처럼 실제와 다른 MBTI 가면을 쓰고 있을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