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ti의 공격적 활용법>
학창 시절 매주 토요일 저녁마다 내가 꼭 챙기는 것이 있었다.
지금은 전설이라 쓰고 레전드라 읽는
예능 프로 '무한도전'.
지금도 잊을 수 없는 명장면들이 참으로 많지만
개인적으로 BEST 장면을 꼽는다면
꼭 빠지지 않는 장면이 있다.
바로 콩트 특집 중 하나인 '무한상사'의 한 장면인데,
그날 무한상사의 ‘그랬구나’ 코너에서는
우리의 박명수 차장이 진지한 얼굴로
길 사원 얼굴을 지긋이 바라보고 있었다.
박명수: 요즘 댓글 보고 네가 상처받는 것 같더라. 그거 보니까 형도 마음이 아팠어… 그랬구나.
길: 네… 사실 좀 힘들긴 했어요. 사람들이 저를 안 좋게 보는 게 계속 신경 쓰여서요.
박명수: (잠시 뜸 들이다) 그 정도로 힘들면… 이제 그만 (무도에서)빠졌으면 좋겠구나~
길: (당황하며 웃음) 형, 그게 무슨 위로예요!
박명수: (규칙을 지키듯 다시) … 그랬구나!
주변 멤버들: (폭소) “야, 이건 진짜 레전드다.”
이 장면은 정말 레전드가 되어 최근까지 포털사이트에서 '그랬구나 짤'로 회자된다.
개인적으로 당시 화면에 '그랬구나의 공격적 사용'이라 쓰였던 자막까지 생생히 떠오른다.
원래 '그랬구나'는 '공감대화법'으로,
많은 심리치료와 부부상담에서 사용되었던 대화 방법이지만,
우리 박명수 옹께서는 공감대화법의 작은 빈틈을 놓치지 않고, 파고들어 강력한 예능 무기로 활용한다.
역시 웃음 사냥꾼다운 면모였달까.
진솔한 대화법을 비틀어 꽂아 넣은 명수 옹의 기습공격은
예능 프로라는 특수한 상황에서 그 진가를 톡톡히 발휘했다.
그런데 만약,
이런 기습적인 공격이 실제 현실 대화에서 오간다면?
당연히 웃음은커녕 여러모로 피곤한 상황이 펼쳐질 것이 분명하지만,
그럼에도 우리는 상대방의 기습적인 무례함에 종종 불편한 상황에 놓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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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F잖아. 그러니까 네가 이해를 좀 해.'
'내가 P라서 원래 계획이랑은 안 친하잖아.'
'또 혼자 상상에 빠졌어? N병 말기 아니야?'
'공감능력 없어? 너 T발 C야?!'
MBTI 공격!!
성격 유형 검사를 가장한
'합리화'와 '비난'
그 효과는 탁월했다.
나와 상대를 이해하는데 도움을 주려 했던
당초 목적은 온데간데없이,
자신을 합리화하는 방패와
상대를 공격하는 무기로 사용된다.
예능이란 특수한 상황이라면
웃음에 맛을 북돋는 MSG가 될 수도 있겠으나,
실제 현실에서는
무고한 피해자가 발생한다.
바야흐로 MBTI의 시대라 할 정도로
흥미로운 문화 현상이자
유용한 도구임은 분명하지만,
우리에게 주어진 많은 혜택들이 그러하듯
올바른 사용방법에 대한 설명서를 주의 깊게 다시 살펴야 할 때가 아닐까?
'나'와 '당신'
모두를 지키기 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