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한 여정의 시작
학창 시절 나에게는 인생의 '정석' 같은 명확한 지도가 존재했다.
마치 게임의 필승 공략처럼,
지도가 가리키는 방향 그대로만 따라가면 되는 줄 알았다.
벌써 15년도 더 지난 일이지만,
나의 고향 전주는 시험에 합격해야 인문계 고등학교에 입학할 수 있었다.
그렇지 않으면 실업계 혹은 시외로 학교를 다녀야 했다.
그래서 우리는 초등학교를 졸업한 직후 곧장 예비 수험생이 되었다.
당시 주변 어른들은 목에 핏대를 세워가며 강조했다.
“사람 구실하려면,
인문계 고등학교는 가야 한다.”
좋은 대학, 괜찮은 직장, 안정된 결혼 생활, 내 집마련.
모든 것의 출발점은 인문계 고등학교 입학이었다.
마치, 성공한 인생행 버스에 탑승하기 위한 승차권처럼.
주변 모두가 한 방향을 가리키는 것 같았고,
나 역시 당연하게 그 길을 따랐다.
딱히 의심할 이유는 없어 보였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운 좋게 인문계 고등학교에 입학했고,
우여곡절 끝에 대학에도 갔다.
인생정석의 VIP 좌석까지는 아니더라도,
평균의 끄트머리 어디쯤엔 속한 것 같았다.
어떻게든 낙오되지 않았다는 생각에 안도했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말이다.
/
그리고 거짓말처럼 길을 잃었다.
분명 지도 위를 걷고 있었는데,
어느 순간부터 마음이 흐릿해졌다.
'무엇을 위해 이렇게까지 해야 하는 걸까?'
'그래서 이 끝엔 뭐가 있길래?'
여전히 뭔가를 열심히 하고는 있었지만,
짙은 안개처럼 자욱한 생각에 가로막혀
한 치 앞도 보이지 않았다.
결국 남은 건 실체 없는 공허와 막막한 불안뿐.
인생이 망해 버릴 것만 같았다.
그렇게 지도를 펴놓고 길을 잃었다.
믿는 도끼에 발등이 찍힌 기분이 이런 걸까.
누구도 이 상황을 책임져주지 않았다.
이 방향을 가리켰던 누구라도 탓하고 싶었지만,
아무도 탓할 수 없었다.
그게 제일 화가 났다.
따지고 보면 모든 선택의 책임은 내 몫이었다.
계좌 안 새파랗게 멍든 주식을
환불해주지 않는 것처럼.
그래서 결심했다.
어차피 망할 거면, 원하는 걸 하고 망하기로.
방향이 정해진 지도를 따라가도 길을 잃는다면,
내 마음이 향하는 방향에서 헤매기로 했다.
남부럽지 않은 길이 아닌,
나에게 부끄럽지 않은 길을 택하기로 했다.
그렇게 나만의 이상한 여정이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