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 힘든 이야기 계속 듣다 보면 힘들지 않으세요?"
"나도 모르게 영향받아서 힘들 것 같아요."
정신과에서 임상심리사로 일한다고 하면
꼭 빠지지 않고 듣는 질문이다.
그때마다 생각해 보지만,
매번 나의 답변은 같았다.
"음.. 환자 때문에 힘들었던 적은 없는 것 같아요."
"진짜 힘들게 하는 건.. 보고서..."
그렇다.
나는 나의 일을 좋아하고,
나름 자부심을 갖고 있지만,
항상 나의 발목을 잡은 것은
그놈의 보고서.
구체적으로는 '글쓰기'였다.
/
끝도 없이 써 내려가는 심리평가 보고서와 치료 일지.
정신과 심리평가는
환자 증상과 진단을 살피는 목적으로
전문적인 의견을 제시하는 일이기에
언제나 조심스럽다.
더욱이, 내가 쓴 보고서가
장애진단 증빙을 위한 자료로 첨부되거나
법원에 재판 증거자료로 활용되는 경우는,
단어 표현 하나에도 신경이 곤두선다.
누군가의 마음을 헤아리는 일이
쉬운 일은 아니지만,
그 마음을 글로 정리한다는 것이
항상 벅찼다.
환자들과 만남이 늘어날수록,
쌓여가는 보고서와
밀어닥치는 제출 기한.
흰 배경에 깜빡이는 커서를 두고
머리를 쥐어뜯은 지도 이제 7년이지만,
의무와 책임이라는 무게만큼
글쓰기란 나에게 고단한 일이었다.
/
그런데 지금은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글을 쓰겠다고 앉아있다.
사람 마음이란
정말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여전히 글을 쓰는 행위는
나로서는 어렵고 이상한 일이지만,
그럼에도 쓰고 있다.
그냥 쓴다.
왜?
잘 모르겠지만,
그래도 이 순간 만큼은
다른 이가 아닌,
나에게 충실할 수 있어서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