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고향 친구들이 모두 모인 술자리.
살짝 알딸딸해 왁자지껄한 분위기 속,
언제나처럼 실없는 농담이 오가던 중
경찰관으로 일하는 친구 녀석이 불쑥 질문을 던졌다.
"너희가 생각하기에 우리 주적은 누구일 것 같냐?"
"강력범죄자?"
"전문 시위꾼?"
"밤샘 잠복근무?"
"아파트 대출 이자?"
농담 반, 진담 반
장난 섞인 답변을 포함해
여러 빌런이 등장했지만,
모두 '땡'.
잠시 뜸을 들이던 그가 정답을 말했다.
"우리 주적은 주취자야. 주취자!"
민중의 지팡이로 지낸 지 10년이 넘은 그의 입에서
웃픈 현실고증이 계속되었다.
그의 말에 따르면,
도시 질서와 시민의 안전을 지키기 위한 업무가 많지만,
일선 파출소에서는 매일 밤 주취자들과 실랑이로 전쟁을 방불케 해
대도시 번화가 근처 파출소 근무는 다들 꺼릴 정도라고.
알코올에 삼켜진 주취자들의 천태만상을 매일 받아내다 보면,
직업적인 사명감은 물론이고,
사람에 대한 기본적인 인류애 마저 흐려질 뻔한 적도 있다고 했다.
실무자의 생생한 경험을 듣다 보니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지만,
왜인지 솔직하고 싶지 않았다.
그렇게 잠자코 듣고 있던 중에
나는 친구 녀석의 술잔에 소주를 거하게 한 잔 따랐다.
그리고 오히려 더 얄궂게 말했다.
"야, 너는 무슨 주취자 욕을 하면서 술을 마시냐?
대신 오늘은 네가 주취자 해라.
얼른, 짠이나 해-."
아마 가면성 'F' 나름의 이상한 위로였던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