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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다 Nov 06. 2020

여기, 그림 속 그 자리..


Children Playing at Kampa /1854

Soběslav Pinkas(1927-1901)  


그림 속 아이들이 삼삼오오 모여 있는 이곳.

어딘지 익숙한 풍경 앞에 발길을 잠시 멈추게 됩니다.


어디서 봤더라.....


이곳은 바로 까를교 아래 캄파 공원으로 가는 길목입니다.

1854년 작가가 스물일곱 살의 청년일 때 그려준 프라하의 뒷골목 일상 - 

아이들은 뒷골목의 허름한 담벼락 아래 모여 벽틈에서 나오는 벌레떼를 구경하기도 하고 젖먹이 동생을 들쳐 안고 앞세우며 오후의 한때를 보내고 있습니다.


아이들의 차림새로 그 시절 체코의 형편이 상상이 갑니다.
모든 아이들이 맨발이며.. 벽을 짚고 벌레를 보는 흰 셔츠의 소년은 팔꿈치가 해진 옷을 그대로 입고 놀고 있습니다.  그늘진 뒷골목에서 아이들이 방치된듯 모여있는 모습에 웃음이 보이지 않습니다.


건물의 지붕과 옆 건물이 드리우는 그림자 처리에 자연적으로 시선은 그림의 왼쪽 흰 셔츠를 입은 소년의 손끝이 닿아 있는 지점부터 대각선으로 훑어 지나게 되는데, 그 속에서  아이를 안고 있는 소녀의 붉은 치마가 그림의 중심이 되어 오른쪽 파란 하늘하고 대비되며 선명하게 그림의 균형을 맞춰 줍니다.

세상의 밝음 뒤에 가리어진 어두운 빈민가 아이들의 모습을 작가는 대비시키고 싶었던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림의 가운데 파란색 앞치마를 입은 서너 살쯤 된 꼬맹이는 시무룩한 표정으로 바닥을 응시하고 있는데요. 

무엇에 심퉁이라도 난 것처럼 바지춤에 손을 꽂고 있는 모습도 그렇지만 무슨 생각을 하는 건지 아이가 자꾸 마음을 잡아 끕니다. 볼수록 아이들의 맨발이 맘에 걸리다가 그래도 프라하는 흙바닥이 아니라 돌바닥이라 다행이다.. 싶기도 한..


아이들이 중심이된 그림 속에서  어른들은 아이들을 등지고 걸어가거나 자기 일에만 열중입니다.  

낡은 창가에 걸터앉은 아저씨는 해어진 옷을 수선하는 듯 아이들에겐 눈길 하나 주지 않고 있네요. 

어른들은 그 시절이 살아내기에 퍽퍽했던 시절 


그림 속 그 찰나의 순간..

그곳 공기의 냄새까지 알듯한 1854년의 프라하 일상입니다. 


국립 미술관 갤러리에서 이 그림을 보고 난 뒤, 

그림 속에서 본 그곳을 직접 찾아가서 지금은 어떻게 변했을지 비교해보고 싶단 생각에 프라하 시내로 발길을 옮겼습니다.


화창한 날씨와 파란 하늘은 지금도 그림속 그때와 딱 맞습니다.

'그곳'을 찾는 재미는 보물찾기처럼  설레기도 하고 특별한 즐거움이 있었습니다.


찾았다!  여기...




그림 속 그 장소는 166년이 지났어도 이렇게 아직도 그대로입니다. 

지금은 그림 속에서 보이는 집은 정리가 되고 배경이 되는 까를교와 첨탑.. 그리고 석상만이 그림 속 그대로의 모습으로 남아있네요.

이곳이 프라하여서 가능한 일이겠죠?

화가가 그림을 그렸던 시점까지 예상해서 아이들이 놀고 있던 그 골목 안에서 본모습입니다.


체코, 이야기의 땅 

살아보니 체코는 정말 '이야기의 땅'입니다. 

오랜 세월 담아내고 있는 그림과 그 속의 사람들.. 그리고 음악까지! 

프라하의 천 개의 백탑만큼이나 숨겨진 작품과 이야기가 정말 무궁무진하답니다.

이런 숨겨진 '그곳' 을 찾는 재미까지 더해지니 작품과 함께 내가 사는곳을 더 재미있고 깊이있게 볼수 있는것  같습니다.




위에 소개한 골목풍경 그림을 그리기 바로 일 년 전인 1853년에 그린 화가의 초상화가 있어서 소개해 봅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초상화 감상하는것을 좋아하는데요. 초상화 속에 주인공의 눈빛과 표정을 따라가며 그의 삶을 짐작해 보기도 하고 복식이나 장식을 보며 그당시의 역사를 꿰어볼수 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Self-Portrait /1853

Soběslav Pinkas(1927-1901)  



화가의 본명은 Hippolyt Karel Maria František Pinkas... 본명은 이렇게 길지만, 체코 민족주의를 지지하는 의미를 담아 Soběslav Pinkas로 개명을 했습니다. 

체코 정치가의 아들로 태어나 처음엔 법학을 전공했던 소베 슬라브 핀카스는 일련의 정치적 소요에 휘말린 이후 미술학도로 전향하여 독일과 프랑스에서 유학하며 실력을 쌓은 체코 화가입니다. 

서른여덟이 되어서 다시 프라하로 돌아와 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며 국립극장 기획에도 참여했다고 합니다.

예전이나 지금이나 유럽은 프랑스-독일-네덜란드-오스트리아-체코-헝가리 등 국경을 서로 넘나들며 예술과 문학이 교류되고 발전되어 왔기에 작가들의 그림을 이해하는 배경에 국적은 무의미할 때가 있는 것 같습니다. 

체코에서 활동하거나 여생을 보낸 화가도.. 아니면 프랑스에서 활동하던 화가도 서로 영향을 주고받았던 거죠.

그림만이 아니라 음악에서도 모차르트도 프라하에 와서 돈 지오반니 오페라를 헌정하고 공연한 것처럼  국경을 불문한 문화, 예술의 자유로운 교류 덕분에 지금 우리는 서유럽과 중부 유럽 전역에서 명작들을 만날 수 있는 기쁨이 있습니다. 


그림 속 화가의 나이는 스물여섯. 불그레한 볼이 생생한 젊은이의 혈기를.. 시선을 아래로 내리꽂는 턱선과 눈빛으로 넘치는 자신감을 표현했습니다.

턱밑까지 세워 잠근 코트자켓을 입고 붉은넥타이로 포인트를 준 댄디한 모습입니다. 

포마드를 발라 넘긴 머리가 자연스럽게 컬을 그리며 내려왔네요.

이 얼굴로 저 길목에서 그림을 그렸을 화가의 모습을 상상을 해보기도 합니다.



ⓒ had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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