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식으로 표현하면 어느 집안 맏며느리감처럼 보이는 복스러운 여인이 편지를 들고 웃고 있습니다.
전체적인 프레임안에 그녀의 모습은 러브레터를 손에 들고 행복한 표정이 가득합니다.
하얀색 실크 원피스의 짙은 초록 무늬 패턴의 자연스러움과 투명한 레이스 표현이 그림 앞으로 얼굴을 가까이 가져가 보게 하네요. 세로 줄무늬는 예나 지금이나 통통한 여인들의 필수 패턴입니다.
그녀의 패션을 잠시 살펴보면 당시 최고로 유행하던 엠파이어 드레스에 러프 칼라까지 달려있고, 흰색 레이스 보넷으로 둥글게 얼굴을 감싸고 있죠. 이 드레스 형태는 1820년까지 유행이 계속되니까 그림이 그려질 당시 1816년에 빗대 보면 여인은 최고의 신상을 맞춰 입고 화가 앞에 서있다고 보면 됩니다. 증명사진이라도 찍을라 치면 제일 예쁜 옷을 골라 입는 지금의 우리 모습하고 다를 바가 없습니다. 몇 해 전 초상화 속 패션만을 따로 모아둔 책을 본 뒤로는 유럽의 초상화를 볼 때 복식과 액세서리까지 자연스럽게 한참을 보게 되네요. 당시의 유행을 제대로 볼 수 있어서 작품 속 작품이라고 할까요? 이 또한 아주 별다른 재미를 줍니다.
넉넉하고 자신감 넘치는 보헤미안 특유의 진한 이목구비를 가진 이 분이 들고 있는 편지의 내용이 또 궁금한데요.
관람객들은 즐거움이 반짝이는 그녀의 눈빛을 마주치며 그림 속 그녀의 이야기에 쉽게 빠져듭니다.
Fröhlich seyn bedarf man
wenig
und wer froh ist, ist
ein König..
Pinxit,Machek
Prag 1816
당신은 행복해야 합니다.
조금
그리고 행복한 사람은 왕..
수정, Machek (작가 이름)
프라하 1816
작품 속 모델에게 작가가 전하는 말일까요? 편지 내용은 독일어로 작성이 되어 있네요.
작가의 서명과 함께 보란 듯이 들고 있으니 번역기를 안 돌려 볼 수 없습니다. 정확한 의미 전달은 아니더라도 '행복하게 사는 게 왕처럼 사는 것이다'라는 의미를 담고 있는데요.
200여 년 전의 그림 속 편지에서 현대를 사는 지혜를 배워갑니다.
TIM : 체코는 오스트리아 피지배를 300년간 받았던 나라였고 지금도 독일과 오스트리아와 국경을 접하고 있기 때문에 독일어도 겸하여 쓰는 사람이 많습니다. 당시는 더구나 식민지하 였으니 혼용될 수밖에 없었죠. 이렇게 외세의 압력과 피지배를 이렇게 오래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체코어를 잊지 않고 그대로 유지하고 있는 뚝심이 강한 민족이라고도 할 수 있죠. - 덕분에 저 같은 외국인들은 넘사벽 체코어 익히기에 아주 혼쭐이 나고 있지만요-
세상 권세와 부귀를 다 가지고 살아도 행복함보다는 공허함 속에 우울함을 토로하는 사람들을 곧잘 보게 됩니다. 행복보다는 손에 잡고 있는 현재의 모습과 사회적 인정.. 그리고 물질이 주는 편리함은 얼마나 달콤한지 손을 펴기가 어렵습니다. 저 또한 그랬구요.
이 모든 것을 내려놓고 프라하에 오니 아침에 지저귀는 새소리와 햇살을 받으며 커피를 한잔 할 여유도 생기고 이렇게 좋아하는 미술을 맘껏 즐길 수 있으니 왕의 권세가 부럽지 않습니다.
그림 속 편지의 서두를 살짝 바꿔 읽어 볼까요?
당. 신. 도. 행복해야 합니다.
그림을 한번 찬찬히 봤으니 이 그림을 그린 화가에 대해 간단히 소개해 드릴께요.
체코식으로 읽는 다면 안또닌 마첵(Antonín Machek)은 체코의 초상화가로 유명한 사람입니다.
당시에 미술 공부하려면 비엔나로 유학을 많이 갔었는데 안또닌도 역시 20대에 비엔나에서 잠시 유학을 하게 됩니다. 하지만 형편이 어려워 곧 다시 프라하로 돌아와서 프라하 미술대학에서 학생들도 가르치며 정착을 해서 그 뒤로 300여 명의 초상화를 그렸다니 정말 많이도 그렸습니다.
ⓒ wikipedia.org
그의 초상화도 작품마다 다 느낌이 조금씩은 다른데, 모두 수작이라고 보긴 어렵고 제가 보기엔 오늘 소개해 드린 그림이 제일 좋은 것 같습니다. 이 그림은 체코 국립미술관에서 소장 전시하고 있으니 언제든 프라하에 오시게 되면 직접 가서 보실 수 있답니다.
이런 초상화 외에도 아래 프란시스 1세와 요세프 2세가 나온 The cycle of King 시리즈 그림과 보헤미안 역사를 정리한 석판화 등도 있지만 초상화만 하지 못합니다. 특히나 오스트리아 왕정을 그린 그림은 깊이감 균형감이 모두 떨어져 매우 별로입니다. 일부러 못나게 그린 것처럼 말이에요. 아마도 그림을 그릴 때 옆에 사공이 많았던 듯하기도 하고요. 그래서 저는 초상화 전문 화가로만 이해하기로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