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ologue)중간에서 결정하는 사람

회의실에는 사람이 많지만 결론은 HR에 남는다.

HR을 하다 보면, 이상하게 혼자가 되는 순간이 많았던 것 같다.

회의실에서 HR주관 또는 참석한 회의에는 다양한 부서의 사람들이 각자의 의견을 쏟아내기 시작한다. 재무에서는 현금과 예산을 이야기하고, 영업에서는 성과에 따른 서포트 이야기들. 그리고 경영진은 그에 따른 결론을 짓기 위한 방향성을 제시한다. 모두가 자신의 의견을 말을 하고, 모두가 동의하는 듯한 고개를 끄덕이지만, 회의가 끝나고 나면 결국 남는 건 하나일 가망성이 높았다.


"HR에서 판단해서 진행해주세요."


회의실에는 사람이 많았지만, 결정은 HR 몫으로 남는 경우가 많다. 특히, 큰 규모의 회사가 아니고 기획부서가 없다면 더더욱 그렇다. 기다릴 수도 없고, 완벽해질 때까지도 미룰 수도 없다. 누군가는 휴가를 가서 다음주에 오거나, 또는 다음주의 신규입사자가 회사에 입사하기를 기다리고 있고, 또 누군가는 수습에 따른 평가를 받아야 한다. 이렇듯 조직은 멈추지 않고 돌아간다.


나는 우연히 HR일을 시작하게 되었다.

처음에는 흥미가 많았다. 다른 일을 하다가 우연한 기회로 HR업무를 하게 되었고, 그렇게 10여년 이상이 흘렀던 것 같다. IT 회사에서 시작하여, 유통업의 복잡함도 겪었고, 제조업의 단단함도 배웠다. 외국계 기업에서 글로벌 시스템도 돌아봤었고, 교육 회사에서 사람을 키우고 성장할 수 있는지도 고민을 하였고, 그리고 다시 외국계로 돌아오게 되었다.

조직은 계속 바뀌었지만, HR의 위치는 크게 달라지지는 않았던 것 같다.


어디를 가든 HR은 '중간'이었다.

경영진과 직원 사이, 목표와 현실 사이, 원칙과 예외 사이.

그 중간에서 저울질하고, 조율하고, 때로는 홀로 결정해야 할 경우가 많았다.

"HR이 알아서 정리해서 알려주세요" 라는 말에는 물론 신뢰가 있다고 생각도 하지만, 책임도 함께 따라 왔다.

결국은 HR은 혼자 판단해야 했다.


그런데 최근 몇 년, 세상이 또 바뀌었다.

AI가 들어오면서 HR의 일은 줄지 않았다. 오히려 더 빨리 결정해야 했고, 그 결정의 책임도 더 무거워졌으며 해야 하는 업무도 더 확장이 되었다. AI를 통해 업무는 빨라지고 확장되었지만, 그 결과에 대한 책임은 여전히 사람의 몫이었다. 데이터는 넘쳐나는데, 정작 모든 질문과 결정에 있어서는 여전히 혼자 결정해야 했다.


다양한 기업에서 1인 HR로 일하게 된 경우가 많았는데 알게 된 것들이 있다.


완벽한 판단은 없다.

아무리 고민해도, 아무리 데이터를 들여다봐도, 채용한 사람이 잘 맞을지, 이 평가 방식이 공정할지, 이 보상체계가 동기를 부여할지는 결국 '해봐야'안다. 완벽을 기다리다가 아무것도 할 수 없다.


늦은 결정은 늘 비용이 된다.

채용을 일주일 미루면 업무가 그만큼 딜레이가 되고, 평가를 한 달 미루면 조직이 불안해한다. 결정을 미루는 동안 조직은 멈춰 있지 않고, 뒤에서 기다리는 일도 기다려주지 않고 계속 다음을 기다리고 있다. 사람들은 계속 일하고, 불만은 쌓이고, 기회는 사라진다.


실수보다 위험한 건 멈춰 있는 것이다.

나는 실수를 많이 했다. 채용시에 안내문자와 이름을 잘못 부르기 부지기수였고,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제도를 만든 적도 있다. 하지만 그 실수들은 결국 다음 판단을 더 좋고 더 빠르게 만들었다. 정말 위험한 건, 실수가 두려워 아무 결정도 하지 않는 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이 연재를 시작하게 되었다.

이 글들. 그리고 앞으로 쓰여질 글들은 '정답'을 정리한 기록이 절대 아니다. HR업무 메뉴얼도 아니고, 성공 사례 모음집도 아니다. 이건 그저, 판단해야 했던 순간들에 대한 이야기이고 이 안에서 어떻게 결정하고 판단했는지를 알려주고 했을 뿐이다.

채용시에 어떻게 정리하면 될 지, 평가를 어떻게 설계했는지, 보상 체계를 어떻게 조정했는지. 조정문화를 어떻게 만들어갔는지, HRD는 어떻게 운영하려 했는지. 또는 회의는 어떻게 이끌었는지. 그리고 AI와 도구를 어떻게 활용했는지. 공부는 어떻게 했고, 시야는 어떻게 넓혔는지.

각 영역에서 HR이 언제, 왜, 어떻게를 결정했는지를 솔직하게 적어보려하고 1인 HR로 고민하고 있는 나와 비슷한 경험을 하려고 하는 사람들에게 말해주려고 한다. 잘한 것도, 못한 것도, 그 순간에는 최선이었던 것을.


혼자서 HR을 한다는 것.

그건 외로운 일이 아니라, 판단의 연속이다.

그리고 그 판단들이 모여, 결국 조직을 만들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