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R에서 검토 중입니다’라는 말의 무게
"HR에서 검토 중입니다."
이 말을 몇 번이나 했을까. 회의실에서, 메신저에서, 복도에서. 그리고 그 말을 할 때마다 느꼈던 미묘한 불편함까지. 검토 중이라는 건 아직 결정을 않았다는 것이나 못했다는 것이고, 심지어 검토 전에도 했던 말이기도 했다. 그건 곧 확신과 제대로 볼 시간이 없었던 것 같다.
나는 늦게 결정한다는 말을 듣기가 싫었다.
"정보가 조금 더 필요할 것 같습니다."
"한 번만 더 검토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이번에는 예외로 처리해 보시는 게 어떠실까요?"
그렇게 말하는 동안, 조직은 이미 돌아가고 있다. 채용 공고는 올라가고 지원자를 받고 있으며, 신규로 올 입사자는 출근 날짜를 받아 기다리고 있으며, 타 부서 팀장들은 평가 결과를 묻고 있다. 그 사이 나만 '조금 더'를 외치고 있었던 것 같다.
문제는 여기서 시작된다.
사실 HR의 결정은 대부분 정보가 부족한 상태에서 내려질 가망성이 높다.
채용을 간단하게 말하자면, 회사에서 영입을 하려는 지원자가 '정말 우리 회사에 맞을까?'라는 생각을 하기 마련이다. 1번의 면접과 제대로 된 직무 파악이 안 되었다면 알 수가 없다.
또한, HR이 참여하지 않은 인터뷰라면 처음 대기실과 면접장소를 안내할 때의 잠깐의 얘기로는 알기가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위의 간단한 예시 외에 타 팀과 회의할 때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재무팀은 숫자로 말할 것이고, 영업팀은 시장 데이터와 매출내역을 보고 말할 것이고, IT부서는 기술 스택으로 말할 것이다. 이처럼 모두 명확하고 정확한 데이터를 가지고 말하지만, HR만 '사람'이라는 가장 예측 불가능한 변수를 다룬다. 그런데도 HR에게 완벽한 근거를 요구받는다.
"왜 이 사람을 뽑았어요?"
"이 평가 기준의 근거가 뭐예요?"
"이 보상안에 대해서 왜 이렇게 나왔는지 알 수 있나요?"
그래서 HR은 정보가 부족한 상태가 아닌, 좀 더 확실한 근거를 만들고 그걸 설명하는 자료를 만들어야 한다.
이런 와중에 결정의 주도권은 다른 곳으로 넘어가기 마련이다. 경영진이 방향을 정하고, 계속 회사는 그 방향성에 따라 이미 움직이다. 그리고 HR은 그 결정을 뒤늦게 '정리'하는 역할을 계속하기 마련이다.
1인 HR로 오래 일하며 알게 됐다.
정보가 부족할수록, HR은 더 빨리 판단해야 한다는 것을.
처음에는 당연히 이해가 안 되었다. 정보가 부족한데 어떻게 빨리 결정하냐고. 하지만 현장에서 부딪히며 깨닫는다. 완벽한 정보는 애초에 오지 않는다는 것을. 그리고 기다린다고 정보다 더 생기는 것도 아니라는 것을.
왜냐하면,
늦은 결정은 늘 비용이 되지만, 틀린 결정은 수정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채용을 1주 ~ 2주를 미룬다면, 그만큼 해당 업무를 수행하는 해당 팀원들의 업무 부담은 늘어나며, 해당 팀의 사기는 떨어지고 다시 올리기가 쉽지 않다.
평가를 늦추게 되면, 그 평가를 기다리는 구성원들이 마음이 업무에 집중하기가 쉽지 않으며 계속 HR에 대한 신뢰는 낮아지게 된다.
보상안에 대해 결정을 미룬다면, 구성원들은 이미 다른 곳을 알아보기 시작한다.
반면, 틀린 결정은 고칠 수 있다.
잘못 뽑았다면 수습기간에 좀 더 세밀하게 판단할 수 있고, 평가 방식이 문제라면 피드백을 받아 개선할 수 있고, 보상안을 구성원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추가 보상 또는 다른 복리후생 대책으로 모든 마음을 살 수는 없지만, 조금이라도 돌릴 수가 있다.
물론 틀린 결정에도 비용이 따른다. 하지만 늦은 결정은 이미 지나간 시간과 신뢰를 되돌릴 수 없다.
HR의 결정은 기록으로 남지 않아도, 조직에는 흔적으로 남는다.
회의록에는 "HR 검토 후 진행" 이라고만 적혀 있지만, 그 뒤에 숨은 판단들이 있다.
채용을 미룬 판단-"조금 더 좋은 사람이 나올 거야"
평가를 애매하게 넘긴 판단-"이번엔 큰 문제가 없으니 넘어가자"
보상을 설명하지 않는 판단-"말하면 더 복잡해질 것 같은데.."
말하지 않은 선택도, 결국은 선택이 된다.
그리고 그 선택들은 조직의 문화가 되고, HR에 대한 인식이 되고, 결국 조직의 신뢰에 영향을 미친다.
그래서 나는 결정을 미루지 않기로 했다.
완벽하지 않아도 기준을 세우고, 그 기준으로 선택하기로 했다.
"이 정도 역량이면 채용을 진행한다."
"이 기준을 충족하면 승격 대상이다."
"이 범위 안에서 보상을 결정한다."
기준이 명확하면, 판단이 빨라진다. 그리고 기준이 있으면, 설명이 가능해진다. 설명이 가능하면, 신뢰가 쌓인다.
물론 모든 상황을 완벽하게 담을 수는 없다. 예외는 반드시 생기기 마련이다. 하지만 기준이 있다면, 예외도 '왜 예외인지' 설명해 줄 수 있다.
그리고 마지막 질문 하나를 계속 스스로에게 던질 수 있어야 한다.
"다시 돌아가도, 나는 같은 결정을 할 수 있을까?"
이 질문에 고개를 끄덕일 수 있다면, 그 정도의 판단으로도 충분하다.
완벽하지 않아도, 그 순간의 기준에 따라 결정했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HR은 정답을 찾는 사람이 아니다.
주어진 상황에서 최선의 판단을 내리는 사람이다.
그리고 그 판단들이 모여, 결국 HR을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