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HR은 항상 늦게 결정하려 할까'의 질문
HR의 결정은 항상 "사람"으로 남는다.
가끔 영업팀이 부러울 때가 있었다. 그들이 이번달에 영업실적을 채우지 못했다면, 다음 달에 더 열심히 뛰어서 다시 실적을 끌어 올리는 모습들을 많이 보았다.
마케팅팀도 마찬가지다. 마케팅이 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틀리면 캠페인을 중단하거나 바꿀 수 있다.
그런데 HR이 틀리면 어떻게 될까?
사람의 인생에 지울 수 없는 체크 표시가 남게 된다.
채용, 평가, 보상, 승진.
내가 다루는 이 업무들은 단순히 액셀 파일에 숫자로 남는게 아니었다. 사람의 기억 속에, 그리고 그들의 인생에 고스란히 저장되는 것들이었다.
그래서 나는 본능적으로 겁을 먹었던 것 같다.
"조금만 더 보자"
"혹시 모를 변수가 있지 않을까?"
"나중에 문제 되면 어떡하지?"
바로 이런 생각이 드는 순간부터 나의 결정은 느려지기 시작했다.
단순히 겁이 나는 것이 아닌, 짊어진 책임의 무게가 너무나 명확하게 보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더 큰 문제는 따로 있었다.
내가 결정을 미루는 사이, 회사는 나를 기다려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HR은 늘 '합의의 마지막 줄'에 서 있다.
회사의 회의 구조를 보면 보통 이렇게 흘러가기 마련이다.
영업팀은 지금 당장 지원이 필요하다고 할 것이며, 재무팀에서는 예산의 따른 가이드를 주고 더 사용하지 않도록 통제를 할 것이다. 회사의 경영진은 리스크가 생기지 않게 관리하라고 지시할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에 떨어지는 결론은 나를 향했다.
"HR에서 정리해서 판단해주세요."
결국 모두의 말을 다 들은 뒤, 혼자 결정해야 하는 외로운 역할. 1인 HR. 이런 구조 속에서 나는 자연스럽게 학습했다. 빠른 결정은 '독단'이고, 늦은 결정은 '신중함'이라고.
그렇게 나는 어느새 '결정'하는 사람이 아니라, '검토'를 말하는 직무가 되어가고 있었다.
예전에 일이었다.
연말부터 그 다음 해 연초까지 보상안을 정할 때가 기억난다.
1달 동안 시장 데이터를 더 모으고, 타사 사례를 추가로 찾고, 여러 시나리오를 만들었다. 당연히 완벽한 근거를 만들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보상에 대해 임직원들의 질의응답이 있으면 좀 더 상세하게 안내를 하기 위해 답변을 늦게 해주는 일이 다반사였다. 더불어 개인의 연봉 오픈 이후, 재협상이 늦어지는 사이, 직원 한 분이 조용히 퇴직을 하게 되었다.
그분과 퇴직면담을 시행할 때 잊혀지지 않는 이야기를 나에게 넌지시 얘기했다.
"기다리다 지쳤어요. 회사가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알 것 같더라고요."
그때 깨달았다. 내가 신중하게 검토 하는 동안, 누군가는 이미 떠날 준비를 하고 있었다는 것을.
나의 '신중함'이 누군가에게는 '무관심'으로 느껴졌다는 것을
그렇지만 이러한 모습들이 점점 더 쌓이게 되면, HR은 결정을 안 한다고 보여지기 마련이다. 왜냐하면, 결정을 미루는 모습을 계속 보여왔기 때문이다. 미루면서 이러한 생각들을 계속 해왔다.
'공정해야 한다.'
'문제 없어야 한다.'
'나중에 설명 가능해야 한다.'
위의 기준들은 훌륭하며, 틀린 말이 결코 아니다. 다만 결정적인 한 가지가 빠져 있을 뿐이다.
바로 "지금 조직에 필요한 속도" 였다.
HR은 실수하면 사람들이 기억해서 무섭다.
그래서 천천히 생각하는 게 옳다고 느끼게 된다.
하지만 회사는 나를, 그리고 HR을 기다려주지 않는다.
그래서 나는 이제 인정하기로 했다.
늦은 결정은 착해 보일지 몰라도, 결코 좋은 결정은 아닐 수 있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