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화) 판단이 HR을 만든다.-8

"혼자 결정하는 HR이 반드시 만들어야 할 세 가지"

"혼자 결정하는 HR이 반드시 만들어야 할 세 가지"

– 기준표, 판단 메모, 그리고 되돌아보기


나는 오랫동안 결정한 뒤에 돌아보지 않으려고 했다.

결정이 끝나면 다음 결정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채용이 끝나기도 전에 급여작업을 해야 하고, 급여작업이 끝나가기 전에 리뷰를 준비해야 하고. 이렇듯 일은 계속 생겼고, 지나간 결정을 꺼내볼 여유가 없었다.


그게 문제인 줄은 몰랐다. 그냥 바쁜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지 이런 순간이 왔다.


채용을 하나 진행했다.

후보자와 회사 핏이 맞았다고 판단하여 빠르게 채용을 진행하였다.

기존에 회사에서 프리랜서로 일했던 사람에 대해 채용이었기에 내부 경영진은 큰 고민을 하지 않았다.

나도 합류한 지 얼마 되지 않았고, 빨리 해달라는 요청에 빠르게 진행하였다.

정말 당시에도 쾌 빠른 판단이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수습기간이 끝나갈 무렵 얼마 뒤, 팀 구조가 바뀌고 업무 방향이 달라지면서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 채용. 다시 돌아가도 같은 결정을 할까?"


이 질문은 생각보다 묵직했다. 그리고 그 생각에 대해 선 듯 대답을 하지 못했다.

그때 어떤 기준으로 결정했는지, 무엇을 보고 판단했는지 그리고 조직에 정말 필요한 사람이었는지를 판단하지 못했다.


돌아보지 않은 결정은, 경험이 아니라 그냥 지나간 사건이 된다.


프로운동선수는 경기가 끝나면 본인의 영상을 본다.

경기 중에는 보이지 않던 것들이, 나중에 보이기 때문이다. HR의 결정도 같다.

그 순간에는 정보도 제한되어 있고, 시간이 부족하다. 결정은 항상 불완전하다. 하지만 문제는 그다음이다.

돌아보지 않으면, 판단은 경험이 되지 않는다.


그래서 혼자 HR을 하면서 세 가지를 만들기 시작했다.

감으로 판단해 온 것들을, 구조로 바꾸는 방법이다.


첫 번째. 기준표.

What. 기준표는 자주 마주치는 판단 상황에 대해 미리 나만의 기준을 정해준 문서다.

"이 포지션은 이 정도의 연봉 선에서 결정한다.""포지션의 채용 최종 결정은 이 세 가지 조건을 정하고 그걸 충족할 때 진행한다."이건 누군가에게 설명하기 위한 규정이 아니라, 내가 빠르게 판단하기 위한 내 기준이다.

Why. 기준이 없으면, 비슷한 상황마다 처음부터 다시 고민한다. 에너지가 낭비되고, 결정이 흔들린다. 기준표가 있으면 판단이 빨라진다. 그리고 무엇보다 설명이 가능해진다.

How. 복잡할 이유는 없다. 지금 자주 판단하는 상황을 다섯 가지 정도를 골라보자. 각 상황에 "나는 이럴 때 이렇게 판단한다"는 한 줄씩만 적어도 충분히 빨라질 것이다.


기준표는 정답을 모아두는 곳이 아니다. 내 판단의 출발점을 정해두는 곳이다.


두 번째. 판단 메모.

What. 판단 메모는 결정을 내릴 때, 그 근거를 짧게 기록해 두는 것이다.

채용을 결정하면 간단하게 "이 사람을 채용한 이유. 팀의 현재 공백과 이 사람이 강점이 맞다고 판단했다. 연봉은 밴드 상한에 걸려 있지만, 이 시점에 놓치면 리스크가 더 크다고 본다." 이렇게 간단히 적으면 충분하다.

Why. 나중에 결정과 어떻게 되었든, 그때의 맥락을 남겨두는 것이 핵심이다. 결과가 나빠지면 누군가 "왜 그렇게 했어요?"라고 묻는다. 그때 대답할 수 있어야 한다. 결과도 좋아도 마찬가지다. 왜 잘 되었는지를 알아야 다음에 반복할 수 있다.

How. 결정하게 되면 3분이면 충분하다. 무엇을 결정했는지, 어떤 기준으로 판단했는지, 이 결정에서 가장 신경을 쓴 리스크가 무엇인지. 이 세 줄만 남겨도 나중에 볼 수 있는 기록이 된다.


판단 메모는 방어를 위한 기록이 아니다. 내 판단의 맥락을 보존하는 기억장치다.


세 번째. 되돌아보기

What. 되돌아보기는 결정한 지 한 달, 혹은 분기가 지난 뒤, 그 결정을 다시 꺼내보는 습관이다.

단 하나의 질문만 하면 된다. "다시 돌아가도 같은 결정을 할 수 있을까?"

Why. 이 질문이 묵직한 이유가 있다. 세 가지가 동시에 보이기 때문이다.

- 그때 내가 가지고 있었던 정보가 무엇이었는지.

- 어떤 기준으로 판단했는지.

- 지금의 나는 무엇이 달라졌는지.

이 질문 하나로, 결정은 단순한 사건이 아니라 학습 데이터가 된다.

How. 다시 돌아가도 같은 결정을 할 수 있다면, 그 결정은 그 시점에서 좋은 판단이었다. 결과가 나빴더라도. 지금이라면 다르게 할 것 같다면, 그건 실패가 아니라고 본다. 기준이 성장한 것이다.


결정의 실력은 결정하는 순간이 아니라, 결정 이후에 만들어진다.


좋은 HR은 결정을 잘하는 사람이 아니다.

결정을 설명할 수 있는 사람이다. 그리고 그 설명은 기준표에서, 판단 메모에서, 되돌아보기에서 나온다.

혼자 판단하면 빠르다. 하지만 이 세 가지를 놓치면 그 빠른 판단이 흔들린다.

감이 아닌, 도구로 움직여야 한다.


다음 화에서는 지금까지 이야기한 것들을 한 번 정리해보려 한다.

왜 HR은 결정을 미루는지. 정보는 어디까지 필요한지. 틀린 결정과 늦은 결정의 차이.

기록의 중요성. 그리고 기준과 예외의 문제.

이번 0화에서 다룬 것들이 결국 하나의 질문으로 수렴하게 된다.


HR은 어떤 사람이어야 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