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삶을짓다 May 10. 2023

하루종일 남편의 퇴근을 기다리는 삶은...

To. 오늘도 하염없이 배우자의 퇴근을 기다리고 있을 당신에게

“오빠 오늘은 언제 퇴근해?” 

오늘도 결국 이 톡을 보내고 말았어요. 남편은 오늘도 최선을 다해 일을 하고 퇴근 시간이 되자마자 꼬물거리는 아기와 제가 기다리는 집으로 올 거라는 걸 알고 있으면서도 말이에요.


아기가 50일이 되어갈 무렵쯤, 코로나19로 매일 재택근무를 하던 남편의 회사는 코로나 상황이 나아짐에 따라서 출근을 하기 시작했어요. 남편이 다니는 회사는 야근이 많은 편은 아니었어요. 그래서 출근시간과 퇴근시간이 일정한 편이었지요.


그래서 대략 몇 시쯤 남편이 집에 올지 알고 있었으면서도 50일쯤 된 아기와 저 둘이만 집에 있는 시간은 무척이나 견디기 힘들어 늘 저런 카톡을 남편에게 보내곤 했어요. 남편은 짬이 나면 답을 해주었지만 짬이 나지 않으면 몇 시간이고 메시지 옆에 쓰인 1은 사라지지 않았어요.


머리로는 알아요. 일찍 퇴근하기 위해서는 집중해서 일을 해야 하고, 일을 하다 보면 메시지 확인이 어렵다는 걸요. 원래도 저희 부부는 연애하던 시절부터 서로 자주 톡을 주고받는 사이가 아니었거든요. 하지만 산후우울로 시작한 우울감이 길게 지속되고 있던 그즈음에는 남편의 상황을 고려해 이해할 수 있는 배려심 따위는 남아있지 않았어요.


남편에게 연락이 없으면, 남편에게 조차 내 존재가 하찮나 싶은 생각에 우울해졌어요. 내가 돈을 벌지 못하니까 이 집에서 쓸모가 없어진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드는 날도 많았어요. 울고, 자고, 싸는 것이 하루 일과의 전부인 아기를 앞에 두고, 소파에 앉아 그런 부정적인 생각으로 상상의 나래를 펼쳤죠. 잘 알다시피 부정적인 생각은 한 번 시작하면 멈출 수가 없잖아요.


긴 시간에 걸쳐 어둡고 긴 터널을 지나는 것 같은 상상을 끝내고 나면 내 쓸모를 증명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눈에 보이는 성취감이 필요했어요. 육아에서는 좀처럼 성취감을 느끼기 어려웠으니까요. 그래서 집안일을 했지요.


어질러진 집안을 치우고, 빨래를 하고, 남편이 저녁 식사를 미리미리 준비하고요. 냉장고가 반찬으로 채워지고, 집안이 모두 정돈된 상태가 되는 것에서 성취감을 느꼈어요. 적어도 내가 컨트롤할 수 있는 게 하나쯤은 있고, 도우미 선생님을 고용하지 않아도 나 혼자 이만큼 할 수 있어하는 존재의 이유를 스스로 찾았어요.


지금 생각해 보면 그저 육아와 살림을 해서 집안의 평안을 유지하는 것 자체로 큰 일을 해내고 있었던 건데, 그때의 저는 ‘돈’을 벌지 못한다는 사실에 무척이나 매몰되어 있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남편에게 곧잘 “가사도우미와 산후도우미의 역할을 나 혼자 해내고 있으니 매달 300만 원 정도는 가정에 기여하고 있는 셈이야”하고 말하곤 했거든요.


집안일은 눈에 보이는 성과가 있어서 좋았는데, 아이를 돌보는 것은 그렇지 않았어요. 어느 날부터는 아이가 잠에서 깨서 울어도 멍~하니 있다가 화들짝 놀라 아이에게 가는 일이 생기기 시작했어요. 먼저 비슷한 증상을 겪어 본 선배맘이었던 조리원 동기가 육아우울증의 초기증상 같으니 주변에 도움을 청해보라고 얘기해 주더라고요.


제가 어쩌다가 산후 우울을 넘어 육아우울증이라는 소리까지 듣게 된 걸까요? 출산 전의 당신이라면 알잖아요. 저는 즐겁게 내 삶을 만들어가는 사람인 걸요. 생기 있는 눈으로 하루하루 재밌는 일들을 꽉꽉 채워 살아가는 사람이었잖아요.


이 일을 계기로 저는 달라지기로 했어요. 남편의 퇴근만 기다리는 삶에 “안녕!”하고 인사 고하기로 했어요.  삶을 짓다는 제 닉네임처럼, 내 삶을 정성 들여 짓기로 했어요. 그러니까 당신이 아는 지금의 삶을짓다는 육아우울증에서 빠져나오기 위한 몸부림에서 시작된 것이랍니다. 


오늘도 편지가 길어졌네요. 삶을짓다로 살게 된 이야기는 다음 편지에 또 써볼게요.


오늘 저와 당신의 육아는 조금 더 순탄하기를,

오늘 저와 당신, 우리의 하루는 조금 더 행복하기를 바라요!


그럼 우리, 다음 글에서 또 만나요!

안녕!


ps.

혹시 이 글을 읽는 당신이 말이에요. 이런 제 이야기에 공감하고 저를 응원해 준다면 저는 무척 힘이 날 거예요. 간단하게 저를 응원할 수 있도록 이 글의 가장 아래는 ‘라이킷’이라는 버튼이 있답니다! 

다음 이야기가 궁금할 당신을 위해 ‘구독하기’라는 버튼도 있더라고요. (그냥 그렇다고요 ㅎㅎㅎ)


거기에 더해  혹시라도 당신의 이야기도 들려준다면 더할 나위 없고요.

기다릴게요! 당신의 이야기를요!

작가의 이전글 '급여'가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