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삶을짓다 May 03. 2023

'급여'가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To. 더 이상 울리지 않는 ‘급여’ 입금 알람에 속상한 당신에게.

아기를 데리고 집으로 돌아온 지 며칠 후, 17일이 돌아왔어요. 매월 17일은 급여가 들어오는 날이니까 늘 기분이 좋아지는 날이잖아요. 그런데 2020년 3월 17일에는 ‘급여’ 알림이 뜨지 않더라고요. 물론 알고는 있었어요. 제 계약은 2020년 2월 29일 자로 종료되었고, 저는 이제 직장인의 신분이 아닌 걸요.


하지만 몇 년간 늘 17일이면 울리던 알람이 오지 않은 그날은 뭔가 조금 어색하고 이상했어요. 사회와 연결된 끈이 툭 하고 끊어지는 것 같은 느낌이었달까요. 당신도 알다시피 저는 늘 일에 진심이었으니까요.


일로 자아실현을 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시간이 있었어요. 그리고 내가 일을 하는 건 내 방식대로 사회에 기여하는 거라고 생각했고요. 6년간 17일이면 울리던 그 알람은 이번 달에도 내가 성실하게 일하며 사회에 기여했다는 걸 증명하는 거잖아요.


그런데 바로 그 알람이 오지 않은 거예요. '이제 당신은 이 사회에서 제 몫을 다하 있지 않다'는 선고를 받은 거지요. 급여 알람이 울리지 않은 급여날 오후, 당신도 이런 기분이 들었나요?


저는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는 일을 쉬어본 적이 거의 없거든요. 제게 돈을 버는 행위는 그래서 내가 이 사회에서 제대로 기능을 하고 있다는 의미였어요. 노동을 제공하고 그 대가를 받는 것 이상의 의미가 있었다고요.


그런데 그런 모든 의미를 눈앞에 있는 매 시간 빽빽 울어대는 이 아이가 빼앗아 간 것 같다는 기분이 들었다고 말하면 제가 너무 나쁜 엄마인 걸까요? 그날은 우는 아이가 평소와 다르게 더 버겁게 느껴졌어요. 내 이름 세 글자가 우리 집 바깥에서는 지우개로 쓱싹쓱싹 지워져 없는 사람이 된 것 같은 기분이 계속해서 들었어요.


지금 생각해 보면 그것이 호르몬의 영향으로 느낄 수밖에 없는 산후 우울의 연장선이라고 생각되기도 하지만요. 어쨌든 중요한 건 그 당시의 제 기분이 그랬다는 거예요. 어둡고 사방에서 TV에서는 코로나19에 대해서 끊임없이 비관적인 전망이 제시되고, 아기는 잠시만 눈을 떼도 응애~ 응애~ 울어대는 우리 집에 평생 갇혀버릴 것 같은 그런 기분이요.


흔히 하는 말로 자존감이 낮아진 거죠. 자존감, 스스로 품위를 지키고 자기를 존중하는 마음. 그 마음은 제게 사치처럼 느껴졌어요. 아이가 울면 수유를 하기 편하게 디자인된 옷의 앞섶을 열고 아이에게 젖을 물리는 제 모습은 품위 있는 인간의 모습은 아니었거든요. 오히려 짐승의 모습에 가까웠어요.


내가 30년이 넘는 시간 동안 내 삶을 나 스스로 빛나게 만들고 싶어서 얼마나 노력하며 살았는데! 하는 억울한 마음이 하루에도 몇 번씩 욱하며 치밀어 올랐어요. 당장 눈앞의 아기를 돌보아야 하니 치미는 그 마음을 제대로 마주하고 들여다보며 수습할 수 있는 시간은 없었어요.


시간이 조금이라도 생기면 문을 박차고 나가 동네를 한 바퀴 도는 일이 제가 할 수 있는 전부였지요. ‘이 시기가 지나가면 조금 괜찮아질 거야’ 하는 주문을 외우면서요.


그리고 그 주문은 이루어졌어요. 그래서 지금 당신에게 이 글을 쓰고 있는 거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를 보육하며 돈도 벌고 나를 찾는 방법을 찾았으니까요. 아니, 찾아가고 있으니까요. 아이 하원시간이 코 앞으로 다가왔어요. 이만 줄여야겠어요. 안녕.


오늘 저와 당신의 육아는 조금 더 순탄하기를,

오늘 저와 당신, 우리의 하루는 조금 더 행복하기를 바라요!


그럼 우리, 다음 글에서 또 만나요!

안녕!



ps.

혹시 이 글을 읽는 당신이 말이에요. 이런 제 이야기에 공감하고 저를 응원해 준다면 저는 무척 힘이 날 거예요. 간단하게 저를 응원할 수 있도록 이 글의 가장 아래는 ‘라이킷’이라는 버튼이 있답니다! 다음 이야기가 궁금할 당신을 위해 ‘구독하기’라는 버튼도 있더라고요. (그냥 그렇다고요 ㅎㅎㅎ)


거기에 더해  혹시라도 당신의 이야기도 들려준다면 더할 나위 없고요.!

작가의 이전글 아기가 태어났습니다... 그런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