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 더 이상 울리지 않는 ‘급여’ 입금 알람에 속상한 당신에게.
아기를 데리고 집으로 돌아온 지 며칠 후, 17일이 돌아왔어요. 매월 17일은 급여가 들어오는 날이니까 늘 기분이 좋아지는 날이잖아요. 그런데 2020년 3월 17일에는 ‘급여’ 알림이 뜨지 않더라고요. 물론 알고는 있었어요. 제 계약은 2020년 2월 29일 자로 종료되었고, 저는 이제 직장인의 신분이 아닌 걸요.
하지만 몇 년간 늘 17일이면 울리던 알람이 오지 않은 그날은 뭔가 조금 어색하고 이상했어요. 사회와 연결된 끈이 툭 하고 끊어지는 것 같은 느낌이었달까요. 당신도 알다시피 저는 늘 일에 진심이었으니까요.
일로 자아실현을 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시간이 있었어요. 그리고 내가 일을 하는 건 내 방식대로 사회에 기여하는 거라고 생각했고요. 6년간 17일이면 울리던 그 알람은 이번 달에도 내가 성실하게 일하며 사회에 기여했다는 걸 증명하는 거잖아요.
그런데 바로 그 알람이 오지 않은 거예요. '이제 당신은 이 사회에서 제 몫을 다하 있지 않다'는 선고를 받은 거지요. 급여 알람이 울리지 않은 급여날 오후, 당신도 이런 기분이 들었나요?
저는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는 일을 쉬어본 적이 거의 없거든요. 제게 돈을 버는 행위는 그래서 내가 이 사회에서 제대로 기능을 하고 있다는 의미였어요. 노동을 제공하고 그 대가를 받는 것 이상의 의미가 있었다고요.
그런데 그런 모든 의미를 눈앞에 있는 매 시간 빽빽 울어대는 이 아이가 빼앗아 간 것 같다는 기분이 들었다고 말하면 제가 너무 나쁜 엄마인 걸까요? 그날은 우는 아이가 평소와 다르게 더 버겁게 느껴졌어요. 내 이름 세 글자가 우리 집 바깥에서는 지우개로 쓱싹쓱싹 지워져 없는 사람이 된 것 같은 기분이 계속해서 들었어요.
지금 생각해 보면 그것이 호르몬의 영향으로 느낄 수밖에 없는 산후 우울의 연장선이라고 생각되기도 하지만요. 어쨌든 중요한 건 그 당시의 제 기분이 그랬다는 거예요. 어둡고 사방에서 TV에서는 코로나19에 대해서 끊임없이 비관적인 전망이 제시되고, 아기는 잠시만 눈을 떼도 응애~ 응애~ 울어대는 우리 집에 평생 갇혀버릴 것 같은 그런 기분이요.
흔히 하는 말로 자존감이 낮아진 거죠. 자존감, 스스로 품위를 지키고 자기를 존중하는 마음. 그 마음은 제게 사치처럼 느껴졌어요. 아이가 울면 수유를 하기 편하게 디자인된 옷의 앞섶을 열고 아이에게 젖을 물리는 제 모습은 품위 있는 인간의 모습은 아니었거든요. 오히려 짐승의 모습에 가까웠어요.
내가 30년이 넘는 시간 동안 내 삶을 나 스스로 빛나게 만들고 싶어서 얼마나 노력하며 살았는데! 하는 억울한 마음이 하루에도 몇 번씩 욱하며 치밀어 올랐어요. 당장 눈앞의 아기를 돌보아야 하니 치미는 그 마음을 제대로 마주하고 들여다보며 수습할 수 있는 시간은 없었어요.
시간이 조금이라도 생기면 문을 박차고 나가 동네를 한 바퀴 도는 일이 제가 할 수 있는 전부였지요. ‘이 시기가 지나가면 조금 괜찮아질 거야’ 하는 주문을 외우면서요.
그리고 그 주문은 이루어졌어요. 그래서 지금 당신에게 이 글을 쓰고 있는 거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를 보육하며 돈도 벌고 나를 찾는 방법을 찾았으니까요. 아니, 찾아가고 있으니까요. 아이 하원시간이 코 앞으로 다가왔어요. 이만 줄여야겠어요. 안녕.
오늘 저와 당신의 육아는 조금 더 순탄하기를,
오늘 저와 당신, 우리의 하루는 조금 더 행복하기를 바라요!
그럼 우리, 다음 글에서 또 만나요!
안녕!
p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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