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아름다워
그날은 아무 생각 없이 TV 채널을 돌리고 있을 때였다. 무엇이든 물어보라는 예능 프로그램에서 채널을 멈추었다. 4명의 초등학생 친구들이 나와 나이가 들어서도 함께 살고 싶다고 했다. 자신들의 꿈은 수의사이며 서울에서 함께 지내기 위해 돈을 얼마까지 모아야 하느냐고 물었다. 처음엔 그저 같은 장래희망을 가진 친구들이 귀여워 웃음이 나왔는데 프로그램이 끝날 때쯤엔 웃지 못하였다. 나의 꿈은 뭐였더라? 생각을 되짚어본다.
어렸을 적 나의 꿈은 여러 개였다. 부모님을 따라 그림을 그리는 화가도 되어보고 싶었고, 걷지 않고 날아다니는 의자를 만들어 삶을 윤택하게 만드는 발명가도 되어보고 싶었다. 꽤나 말이 많고 유쾌한 친구들을 관찰하며 심리학자가 되겠다며 도서관에서 융의 책도 빌려본 적이 있었다. 유독 밤하늘을 좋아해 새해가 될 때마다 별을 보겠다며 부모님을 따라 새벽부터 산에 따라가기도 하였다. 그땐 천문학자가 되는 게 꿈이었다.
말 그대로 꿈이었다. 나이가 들며 나의 꿈은 한계라는 기준점을 알게 되어버렸다. 그 기준치에는 실현 가능성이 뒤따랐다. 실현 가능성이 있다면 비전있는 꿈, 실현 가능성이 없다면 그저 망상에 그치고 마는 것이었다. 맞춰진 성적에 맞춰진 대학에 가고, 이 직업은 연봉이 얼마인지, 이 직업은 야근을 얼마나 하는지 등. 이런 기준점들로 나의 가능성과 꿈은 점점 좁혀졌다. 그땐 꿈이 사라지고 그저 생계를 꾸릴 수 있는 선택의 폭이 좁아진 직업 몇 개만이 남아있을 뿐이었다. 꿈과 현실은 언제부터 이리도 괴리감이 깊어졌는지. 내가 순수함을 잃어가서인지도 모르겠다.
나이가 들면서 꿈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는다. 그러니 꿈이 무엇이냐고 물어보지 않는다. 수의사가 되고 싶다던 4명의 친구들처럼 더 이상 누군가와 꿈을 공유하지 않는다. 나이가 들어 꾸는 꿈은 망상에 가깝다고 말한다.
내가 글을 쓰기 시작한다고 고백했을 때 많이 들었던 말들 중 기억에 남는 것이 있다.
“거기 이미 레드오션이야, 네가 베스트셀러 작가가 될 수 있겠어?”
“요즘 시를 누가 읽는다고, 너무 어려워”
맞는 말이다. 요즘 시를 읽는 이들은 극히 소수이며, 서점에 유통되는 책들은 엄청나다. 하지만 내가 많은 액수의 돈을 벌길 바랬다면 아마 글을 쓰지 않았을 것이다. 통장에 0이 늘어나면 좋지만, 나의 꿈은 그게 아니니까.
서른이 넘었지만 아직도 나의 꿈은 여러 개일 것이다. 앞으로 예측 가능한 꿈만 그리지 않겠다. 가능한 것만 꿈꿀 수 있는 건 아니라 믿는다. 그러므로 조건 없이 우리가 꿈을 찾을 수 있길 바란다. 어쩌면 그 꿈을 찾아가는 과정 자체가 인생일지도 모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