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 해?"
"과제하고 있어."
"그런데 왜 핸드폰만 보고 있는건데?"
"이제 시작하려고."
"그럼 반은 한거네?"
"시작이 반이니까? 그러네. 그럼 반 했으니깐, 조금만 있다가 해도 되겠다."
"그러려고 만든 속담이 아닐텐데."
"아 그러게 진짜 내일까지는 다 해야되는데 엄청 하기 싫다. 니가 대신 해줄래?"
"니가 하기 싫은거면 나도 하기 싫지 멍청아."
"아 그러면 말야, 이건 어떨까?"
"뭐가?"
"시작이 반이니까, 시작 한 뒤에는 나머지 반이 있을거 아냐."
"음... 근데 나 벌써 니가 무슨 말 할 지 알거 같은데? 너 다시 또 남은거의 반을, 시작해서 반으로 줄이고, 또 계속 시작만 해서 반으로 줄이려고 그러지."
"아 재미없게 왜 먼저 말해버리는데."
"야, 누가 몰라 그런거 흔한 농담이잖아. 근데 그게 말이 되냐?"
"아니, 그래도 어쨌든, 속담 가라사대, 시작이 반이라고 했으니, 반이 남은 셈이고, 이제 그 남은 반을 또 시작해서 반으로 만들어 버릴 수도 있는거잖아. 그래서 1/2n로 계속해서 더해가면 결국 다 할 수 있는거 아냐? ... 가만 있어봐. 너 수학 잘 했던가? 이거 맞어?"
"맞을걸? 계속해 나가면 결국 1에 수렴하니까, 계속 그렇게 해 나가다 보면, 백퍼센트 다 하게 되긴 할거야. 이론상으론."
"아, 그럼 나 계속해서 시작만 할래. 헤헤"
"그런데, 문제가 있어. 반에 반씩 더해가는게 백퍼센트에 수렴하려면, 무한히 더해야 한다는 거야. 멍청아. n이 무한이어야 한다고. 아마 죽을 때까지도 안 끝날거다."
"윽..."
"자 그럼 계속 고생해. 나 갈테니까."
"아니 잠깐만, 그러면 이런 전략은 어때? 시작을 '네번'만 하는거야. 반을 하고, 또 그 반에 반을 하고, 그 반에 반을 하고, 그 반에 반을 하고..."
"무슨 소린지 하나도 모르겠거든?"
"그러니깐 무한히 이짓을 계속 할 수는 없으니까 할 수 있는 만큼만 해보는거지. 시작을 한 네번만 해도 90퍼센트는 할 수 있어."
"확실해?"
"응. 기다려봐."
"진짜 공부하기 싫어서 계산기까지 두드리고 있는 꼴좀 보소."
"90.625퍼센트! 시작을 네번만 해도 90퍼센트 달성 완료인거야. 인정?"
"그래, 그러면 90퍼센트 다 했으니깐, 이제 놀면 되겠네? 자 놀러가자 그러면."
"안돼..."
"그래, 결국 시작해야지?"
"시작은 이미 많이 했는걸?"
"그러니깐, 그게 하나도 시작이 아닌거야. 시작했다고만 말하고 아무것도 안 하면, 시작은 커녕 아무것도 안 한거지."
"그래. 그래서 시작했다는 것은, 이미 시작해버렸다는 것. 그래서, 이미 시작해버린 것에, 다시 또 시작할 수는 없다는 것. 맞지?"
-
맞다.
결국 그렇게 말하고서는, 열심히 컴퓨터 앞에 얼굴을 파묻고, 일을 시작하는 너는, 망설인 시간보다 더 수월하게 일들을 해치워버릴 것을 알았다. 나는 그것을 가만히 바라보다가 뒤돌아서 밖으로 나왔다.
사람들은 왜 시작이 반이라고 말했던 것일까. 그것은, 시작했다는 것은 이미 시작해버렸다는 것이니까. 다시 시작하기 위해서는, 중간에 단념하든 일들을 완수하든, 끝내는 수밖에 없으니까.
하지만 시작을 망설이는 마음은 어떨까.
망설일 때에도, 이미 마음은 시작되어 버렸다는 것. 망설임의 시작도 또한 여전히 시작. 그래서 이미 그 마음은 분기점을 지나고, 평범하고 무관심하게 살아가던 지난 시절들을 반토막으로 만든다. 그리고 이제 어찌 될지 모르는 그 마음은 나머지 반토막의 삶을 향해서 나아가기 시작한다.
그러고 나서도 마음은 여전히 망설임. 시작해버렸지만, 늘 다시 시작하는 마음. 다시 단념했다 다시 좋아하는 마음. 그래서 그것은 무한히 자기 분할을 시작한다. 망설이는 마음이 끝까지 망설일 때 무한 산술급수. 마음은 완전한 사랑에 수렴하고, 여남은 마음의 공간은 무한히 작아진다. 그러나 여전히 아무것도 시작하지 않은 그 마음. 그래서 시작의 반과, 그 반의 반 끝에 남은 점보다 더 작은 그 공간안에, 완수해야할 마음이 모조리 담기고, 마음은 거듭해 그 밀도를 높여간다.
마음이 무거워진다는 것을 깨닫는다. 마음의 질량이 제로에 수렴하는 그 공간 안으로 계속해서 응축된다는 것을 실감한다. 그게 어그러져 세상의 모든 것을 당기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내가 내 마음을 참을 수 없다는 것을 깨달을 때. 그것을 내뱉으로 애써보지만,
다시 또 망설임.
시작하고 또 시작하는 마음. 단념하고 또 단념하는 마음.
가끔은 슬픔, 가끔은 쓸쓸함. 가고 오지 않는 마음.
시작만으로 일들을 쉬이 끝내버릴 수 있다면, 그래서 그냥 그때 같이 놀러간다면 좋았겠다고.
그리 생각했다.
- 타인의 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