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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하 Oct 11. 2020

청산가리 알약을 파는 가게를 하고 있어

어쩌면, 죽고 싶다고 말하는 너는, 잘못된 곳에 하소연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아니, 어쩌면, 죽고 싶다고 말하는 너는, 적절한 곳에 찾아온 것이고, 내가 미처 몰랐던 것은 아니었나. 마치, 나는 하나의 가게를 차리고 있는 사람처럼.  나는 마치, 한 알이면 순식간에 죽을 수 있는 청산가리 알약을 파는 가게를 운영하고 있는 것처럼. 


아마도, 네가 착각하고 있었거나, 내가 그 가게를 운영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미처 깨닫지 못했거나.


그런 너는 어쩌면, 이렇게 말하고 있는 거야. 


"가장 아끼던 고양이가 죽었어요."


그리고 나는 오로지 한 종류로만 된, 그리고 흰 상자로 된 박스로 가득한 내 작은 가게의 진열을 마치고서, 그런 너를 천천히 바라보고 있는 거지.


가게를 하기 위해서는 냉정해야 해.


짜장면 집 아들이 오히려 짜장면을 더 싫어한다는 것을 알고 있니. 그러나 나의 이 가게를 운영하기 위해서는, 나는 그보다 더 냉정해야 해. 마음껏 먹으면 더 이상 이 가게를 운영할 수 없게 되거든. 그래서 나는 차분하게 마음을 가라앉히고 그 무엇에도 쉬이 흔들려서는 안 되는 거지.


그러나 그 대가로, 나는 네 마음을 이해할 수 없게 되고 말아.


우리 가게에서 우리 제품을 구입하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한지 알고 있니?  우리 가게에서 우리 제품을 구입하기 위해서는, 돈을 지불해야 하는 게 아냐. 합당한 이유가 필요하단다. 그 합당한 이유는, 하나, 네가 우리 제품이 정말로 필요한 이유를 내게 납득시킬 것.


그러나 오랜 시간 이 가게를 운영하기 위해서는, 냉정해야 해.


나는 네가 오래 길렀다는 그 고양이에 대해서는 하나도 관심이 없단다. 그래서 나는 네 눈물에도 관심이 없어. 나는 정녕 네가 왜 고작 그 이유만으로, 여기서 우리 제품을 구입해야만 하는 것인지를 납득할 수 없단다.


나 이렇게 냉정하게 말해도 되는 것일까.


내 작은 가게의 역설.


그래. <청산가리 알약 하나를 구입하기 위해서는, 네 그 마음속 합당한 이유를 내게 지불할 것.>


그러나 나는 네 죽음의 이유를 하나도 납득할 수 없어서, 나는 내 가게의 제품을 네게 판매할 수 없는 거야.


그리고 다시 또 생각. 


어느 이유 하나 쉬이 공감할 수 없는 내가. 그저 무심하게. 


'필요하면 가져가.' 


그렇게 말하며 그저 무심하게. 냉정함을 이유로. 저 심장 안에 있는 슬픔을 그저 하나의 화폐 삼아서. 거리낌 없이 그를 받아서는, 선반 위 가장자리에 놓여 있는 흰 상자를 하나 집어, 카운터 위에 툭 하니 던져 버린다며는 어떨까.


그때 너는 네 마음을 화폐 삼아 지불하고, 또 그를 통해 받은 우리의 거래를 만족스럽다 느꼈을까.


나는 그래서 그저 바라보는 거야.


내가 뜨겁게 뜨겁게 이해한다면, 내가 정말로 모든 것을 열렬하게 이해해버린다며는. 그래서 납득해버린다며는. 그래서 네 마음을 화폐로 바꿔버리는 것이 아니라, 정말로 그 심장을 받아버린다며는.


나는 다시 또 네가 원하는 것을 줄 수 없을 거야.


그 마음을 이해한다는 것은, 마음 쓴다는 것이고, 마음 쓰는 이에게 덜컥, 우리 가게의 제품을 던져주는 일은 있을 수 없거든.


그래서 마음은 다시 장사를 시작하기 위해서, 냉정해져야 하는 거야.


그리고 그렇게 차갑게 얼어붙은 마음은, 이제 네 마음 따위는 전혀 이해할 수 없게 되고, 너는 내게 합당한 그 무엇도 지불할 수 없게 되어 버리는 거야.


그래서, 어쩌면 내 마음은, 무심하게 던져주는 청산가리 알약과, 열렬하게 이해해버려서는 그 무엇도 팔 수 없으니 얼른 꺼지라고 말하는 그 열정 사이에 있는 거야.


나는 그 마음이 될 수 없어, 냉정하고, 차갑고, 그래서 타인이며, 

나는 섣불리 그 마음을 이해해버려서는, 죽음을 납득하고, 그래서 그 죽음을 말려야 하는 타인이며,

나는 여전히 청산가리 알약을 요구받고 또 그것을 팔아야 하는 타인인 거야.


내 마음은, 그래서 완전한 이해와, 철저한 냉정함 그 사이에서.


그저 천천히 바라본다.


내가 할 수 있는 이해는, 그저 터지는 눈물 앞에서,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무심하게 바라보는 것.

그 모든 것을 담아내는 눈은, 무심한 거래와, 아서라는 만류의 사이에서, 눈 하나 깜짝 않고 그저 바라보는 것.


괜찮다. 괜찮다.


오래 보고 샅샅이 바라보는 것. 


그것이 내 작은 가게를 내가 운영하는 방식이라는 것을.


그렇게 깜짝 않고 바라보는 눈은,

더 오래 바라보기 위해서, 

네 어떤 일거수와 일투족을 하나도 놓치지 않기 위해서, 

그리 바라보다, 

건조함을 이기기 위해서,


그제야 눈물을 하나를.


그래.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그저 바라보며, 

이해할 수 없음에 한탄하며, 

섣불리 이해하려 함에 수치를 느끼고, 

나조차도 납득할 수 없는 위로를 간신히 억누르며,

그렇게 바라보다, 

건조한 눈을 못 이겨, 


그저 눈물 한 방울 떨구어 내는 것. 


그것이 내가 여기서 팔 수 있는 것은 유일한 것이었고,

그것이 이 작은 가게를 운영하는 나의 방식.

그것이 잔뜩 쌓아 둔 청산가리 알약 위에 먼지만이 쌓여 있는 이유.


나는 오늘도 장사를 시작하고, 

너는 절대로 원하는 것을 가져갈 수 없을 거야.


하지만 있고 싶은 만큼 있다 가렴.





https://youtu.be/uTe-jviLjx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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